집행부 견제 역할 못한 의회 '자업자득'…의회 공무원 인사 불이익 없어야

퍼스팩티브 테이킹(Perspective taking)은 통상 ‘관점 바꾸기’로 해석된다. 한 시각에서 사물을 보는 관점을 180도 바꿔 반대편에서 보았을 경우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것도 얻을 수 있다. 또 나의 ‘완고한’ 관점을 대화를 나누는 상대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의미도 담겨 있다.

거제시의회에는 4급 서기관인 의회 사무국장, 전문위원인 5급 사무관 2명을 비롯해 20여명의 거제시청 소속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시의원들은 보좌관이나 비서진을 둘 수 없어 거제시청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보좌진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에 거제시청 1000여명 공무원 중에서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우수한 공무원 20여명이 거제시의회서 근무한다고 생각해보자. 공무원들은 거제시 행정에 대한 전문성이 다소 떨어지는 시의원들을 보좌해 입법 활동과 의정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 거제시정에 대한 시의원들의 견제와 감시활동은 돋보일 것이다. 예산 심의서도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할 것이다. 거제시의회가 거제시정이 정상적인 궤도 갈 수 있도록 했을 경우 그 혜택은 고스란히 모든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거제시의회에 파견된 공무원은 승진도 잘 안되고, 기피부서로 인식되면 어떻게 하던지 시의회에 가지 않을려고 할 것이다. 마지못해 시의회에 파견되더라도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시의원 보좌활동을 할 것이다. 하루빨리 본청이나 다른 직속기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회만 찾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 시의원들의 활동 또한 빛나지 않을 것이다. 거제시정에 대한 시의회의 견제와 감시활동은 형식에 그칠 것이다. 시의원의 무딘 칼로 인해 거제시정이 난맥상에 빠졌을 경우 결국은 거제시민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또 다른 경우를 한 가지 살펴보자. 거제시장 부속실에서 근무한 공무원들은 요직 부서 등을 거쳐 다른 공무원들 보다 빨리 승진한다. 역대 민선 시장 시절에 그랬다. 권민호 거제시장의 임기 전반기 부속실에 근무했던 6급 공무원은 이번 7월 정기인사 때 행정과 인사계장으로 발령이 났다. 거제시청 공무원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자리가 인사계장인 것은 '불문가지'다.

거제시의회에 파견된 공무원 중에서 6급 의정담당  계장이 시의회 의장, 부의장, 시의원들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공무원은 5대 의회 하반기부터 4년 넘게 옥기재 의장, 김두환 부의장 등 시의원들의 비서 역할을 했다.

최근 거제시의회 황종명 의장이 승진 후보자 명단 4배수 안에 든 의정담당 계장 승진을 시장에게 건의하기 위해 15명의 시의원 중 13명의 시의원들에게 연대서명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황 의장은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인사압력'이라는 비판이 일자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공무원은 8일 자 인사에서 회계과로 인사 발령이 났다.

거제시공무원노동조합 거제시지부는 성명서를 통해 ‘직위를 남용한 의장은 사퇴하라’와 ‘서명한 의원들은 거제시민과 거제시공무원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겉면만 보면 거제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시의원들이 거제시장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넘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거제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시의원들이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여러 면이 있다. 특히 거제시 집행부와 거제시의회 간에 불문율처럼 된 관행화된 일도 있다.

A 시의원은 “거제시장과 거제시의회 의장은 늘 거제시의회 의사국 소속 공무원들의 인사를 조율하는 것이 관례다”며 “최근 일련의 일로 시장과 의장이 소통과 대화가 되지 않아 이번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거제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한번만 자리를 하고, 대화를 했더라면 이러한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B 시의원은 “이번 같은 일이 근본적으로 생기지 않을려면 시의회 사무국 공무원의 인사권이 거제시의회 의장한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지역 언론 기사에 거제시 간부 공무원의 발언이 들어있다. 이 간부공무원은 “거제시의회가 (이번 사태로)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게 됐다”며 “(연판장 서명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간부 공무원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공무원의 발언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최소한 간부 공무원이면 이번 일이 일어난 원인을 짚어봐야 할 것이다. 시의회 파견 공무원들은 인사 불이익을 당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2010년 지방선거 때 거제시장은 32,955표를 획득했다. 하지만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시의원 13명의 득표 합계는 50,335표다. 시의원의 득표 합계는 거제시장의 득표보다 1.53배 많은 표다. 간부 공무원의 ‘시의회 경시’ 발언은 시민의 대의기관인 시의회에 대한 ‘정면 도전적인’ 발언이다.

이번 일의 바탕에는 장승포 호국평화공원 시의회 ‘의결보류’에 대한 보복차원의 ‘의회 물먹이기 냄새’가 다분히 난다.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의장을 비롯해 시의원에게 있다. 시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시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권위’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시의원 스스로가 이번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더 크다.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행부는 시의회를 얕보고 있는 것이다. ‘8 대 7’이니 뭐니 하면서 ‘내편 네편’으로 나눠 패거리 정치가 초래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낮에는 시의원 역할을 하다가 밤이 되면 거제시청 공무원'으로 전락한 시의원은 없는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거제시의회가 거듭날 수 있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큰 계기다. 거제시의회가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고, 모욕을 당한 이상 이러한 것을 만회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의원에게 있다. 그 답은 거제시의회의 역할과 임무에 충실하는 길이다.

‘좋은 것은 좋다’는 식으로 집행부의 거수기 노릇과 집행부 심부름꾼 역할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정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민의 심부름꾼으로 거듭나야만 추락한 거제시의회 위상을 만회할 수 있다. 무뎌진 칼을 다시 갈아 집행부 견제의 눈빛이 번뜩여야 할 것이다. 의정 활동에 두각을 나타낼 때 다음 선거도 순탄할 것이다.

거제시공무원노동조합은 성명서에 “거제시장은 이번 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다면평가, 직위공모제, 승진 후보자 명부 공개를 요구한다”고 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이 이러한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에서 ‘실시할 수 있다’로 임의규정으로 바꿔 거제시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 단 승진 후보자 명부의 경우 일부는 공개하고 있지만 승진 후보자가 공개를 원하지 않을 경우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거제시 또한 이번 사태를 지금까지 인사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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