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장

▲김용운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장
세계적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가 뛰고 있는 스페인의 축구명문 FC바르셀로나. 선수들 유니폼에 그 흔한 기업체광고가 없다. 대신 이들의 가슴팍엔 UNICEF(유니세프, 국제연합아동기금)가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수백억 원의 유니폼 스폰서를 받는 대신, 매년 구단 수입의 0.7%인 약 1,900만달러를 유니세프에 기부한다. 이 FC바르셀로나가 바로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진 구단이다.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스페인으로 넘어갈 무렵인 2009년, 스페인 전체에서 약 2.4%의 기업이 파산한 가운데, 세계협동조합의 메카라고 불리는 몬드라곤에서는 120개의 협동조합가운데 0.8%인 1개만이 파산하였다. 이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몬드라곤의 다른 협동조합에 100% 재고용되었다. 이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2008년 매출은 약 168억유로(약30조원)이며, 93,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정원각, ‘협동조합의 현황과 다양한 협동조합’)

2008년 프랑스의 유통자본인 카르푸가 스위스에서 철수할 때, 12개 전매장을 인수한 것은 다름 아닌 스위스의 양대 생협중 하나인 스위스생협(Co-op Swiss)이다. 이 생협은 당시 인수한 까르푸매장 직원의 고용을 전원 승계하였고, 경제위기를 맞아 생필품 가격의 안정을 위해 1500억원을 투자하였다. 이 스위스생협은 2009년말 기준 조합원 252만명, 직원 53,000여명을 두고 있으며, 매출은 181억 스위스프랑(약 21조원)에 이르고 있다.(정원각, 위 글)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협동조합 사례들은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한편에서는 국가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성장해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것도 이윤추구만이 목적이 아닌 ‘함께사는 사회’를 꿈꾸며.

왜, 협동조합인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올해는 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12월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지 1년만인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 시행된다. 이제 최소 설립기준인 5명 이상만 모여서 출자하면 누구라도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 기본법에 따르지 않는 농협,수협은 1천명, 생협은 300명이 최소 설립인원이다).

농협이나 수협과 같이 국가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나 한살림, 아이쿱, 안산의료생협 등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으로만 알려져 온 협동조합이 이 기본법 시행으로 이제는 보험업, 금융을 제외한 모든 분야, 업종에서 누구에게나 가능하게 되었다.

내년에만도 3,000여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2017년까지 3만7천개~4만9천개(우리나라 5인 이상의 기업체 중 약 10% 차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점(한겨레 12.1자)에 비추어보면 그 잠재력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것이다.

기존 8개 개별 협동조합법(농협, 수협, 신협, 중소기업협동조합(중기협),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 새마을금고, 엽연초생산협동조합, 산림조합)에 의해, 까다롭게 규정되었던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장벽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야흐로 협동조합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흔히들 협동조합을 일컬어 ‘99%를 위한 경제’, ‘대안 경제’, ‘해고없는 경제’, ‘착한 경제’라고들 지칭한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갈수록 커져가고, 소수의 경제적 지배에 의한 극심한 양극화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성장은 둔화되고, 복지는 축소되며, 일자리는 위협받고, 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시민들이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를 외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무한경쟁과 이윤추구가 목적인 신자유주의가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국가나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나 복지제도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등장한 것이 협동조합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스스로의 힘과 민주적 방식으로 기업체를 운영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상적인 대안기업인 셈이다.

1844년 영국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조합’이 역사상 최초의 협동조합으로 탄생한 역사도 이를 보여준다.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무어가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할 만큼, 엔클로저운동으로 말미암아 농토에서 내쫓긴 임금노동자들의 생활은 비참했고, 동맹파업에 실패하고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에 내몰린 가난한 노동자들이 생활고를 이기기 위한 자구책으로 설립한 것이 바로 최초의 협동조합이었던 것이다. 즉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가난과 생존의 불확실성을 의미한 자본주의의 초기에 협동조합이 탄생했듯이, 복지국가가 퇴조하는 이 극심한 양극화의 시기에 다시금 협동조합이 주목받는 것이다.

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

협동조합(co-operative, 흔히 'co-op, 쿱’이라 부른다)은 말 그대로 ‘협동’과 ‘조합’의 합성어이다. ‘협동’이 마음과 몸을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라면, ‘조합’은 두사람 이상이 출자하여 만든 단체라고 할 수 있다. 즉, 협동조합은 두 사람 이상이 마음과 돈을 모아 만들어 운영하는 기업체라는 의미이다. 협동조합은 그것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는 2가지, 즉 사업체(enterprise)와 사람들의 결사체(association)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협동조합은 1)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enterprise)를 통하여, 그들 2)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바람을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단결한 사람들의 3)자율적인 결사체(association)이다”

첫 번째,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한다는 말은 협동조합이 경제활동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이다. 사업체가 협동조합이 가져야 할 수단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단 그 기업은 조합원 공동의 출자에 의한 공동의 소유여야 하며, 그 운영에 있어 민주적이어야만 한다.

두 번째,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바람을 충족’한다는 말은 조합원들의 무엇을 위해 협동조합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 즉 협동조합의 목적에 관한 부분이다. 일자리, 안전한 먹거리, 문화활동 등 그 어떤 것이든 간에 현재의 필요와 미래의 바람(염원)을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세 번째, ‘자발적으로 단결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라 협동조합의 본질에 해당한다. 협동조합은 정부나 정당, 여타의 조직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사람들의 결사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많은 협동조합 운동이 이 본질을 외면하는 순간,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으로서의 생명을 잃게 된다.

위와 같은 협동조합의 정신은 우리의 협동조합기본법 제6조(“협동조합은 자발적으로 결성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협동조합은 무지개다

협동조합은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리고 시장속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협동조합이 아니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은 어떤 원칙을 견지해야 하는가?

1844년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당시에 정했던 14가지의 원칙은 이후 수십년 간의 역사를 거치면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여 없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원칙으로 7가지를 정하였다(ICA의 상징이 7색깔 무지개인 것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첫 번째, 자발적이고 공개적인 조합원제도. 이는 성, 인종, 종교, 정파, 사회적신분 등에 있어서 차별을 두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 사실 협동조합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가 이 원칙인데, 이는 곧 조합원들은 출자금액에 관계없이 1인1표의 권리(의결권, 선거권)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주식회사가 1주식1표제인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세 번째, 조합원의 경제적참여. 출자에 공동으로 참여하며,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공동재산의 부분인데, 협동조합은 잉여금(기업에서의 ‘이윤’과는 개념이 다르다)이 발생하면 반드시 일정액 이상을 적립하여 공동재산으로 두어야 한다. 나머지 금액은 조합원들에게 사용액이나 출자금액에 따라 배당할 수 있으나, 일정비율을 넘지 않아야 한다.

네 번째, 자율과 독립. 협동조합이 조합원에 의해 관리되는 자율적이고 자조적인 조직이며 약정을 맺거나 외부자본을 조달할 때, 조합원의 민주적 관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협동조합의 모든 권력은 조합원에게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교육, 연수 및 정보제공의 촉진. 협동조합은 일반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여론지도층에게 협동의 본질과 장점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조합원, 임원, 경영자, 직원들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섯 번째, 협동조합간의 협동. 협동조합은 지역, 전국, 국가간 함께 일함으로써 조합원에게 봉사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계경제가 이미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에서 협동조합 역시 협동조합간의 연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 조합만의 폐쇄적인 구조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협동조합이 소속조합원, 또는 개별조합만의 이익이 아니라 속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것은 경제, 사회, 생태,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는가?

앞서 말한 협동조합의 정신을 놓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에서 의미있는 새로운 출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겨례(12.1) 보도에 따르면 협동조합기본법 시행과 더불어 설립될 최초의 협동조합은 대리운전협동조합이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궂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 처우와 임금이 적절지 못하다고 여긴 대리운전자 100여명이 모여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들은 협동조합이 뭔지, 그게 기업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사회, 경제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 ‘갑’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노동자협동조합이다.

대형마트로 존폐위기에 내몰린 골목상권(빵집, 수퍼 등)도 협동조합으로 전환해볼 가치가 있다. 공동의 브랜드와 홍보를 통한 이미지제고와 신뢰구축, 공동구매를 통한 경비절감, 착한소비를 가능케 하는 원가절감까지도 가능하다. 이른바 사업자협동조합이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생활협동조합, 육아협동조합, 대안학교협동조합, 문화공연관람협동조합, 여행자협동조합, 출판인협동조합, 에너지협동조합, 자동차정비협동조합, 의료생협 등 협동조합의 업종과 분야, 그리고 그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협동조합이 사업체로써 성공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이른바 ‘정보비대칭이 큰 분야’로 알려져 있다. 정보나 가격이 지나치게 독점되어 있거나, 소비자들이 신뢰하기 어려운 분야일수록 협동조합의 협동과 신뢰의 힘이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관한 위의 글에서 자칫 협동조합이 나의 경제적 어려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점을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 것은 좋지 않다. ‘돈보다 사람’이라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협동조합의 이중적 특징상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한 업종선택과 출자금의 모집, 조합원의 결집이 필요하다.

하지만, 살벌한 무한경쟁시대에서 협동조합이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2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단순히 협동조합이라고 부르지 않고, 협동조합‘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제적 삶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자립과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적 기여에 이르기까지 매력있고 의미있는 사회활동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함께 사는 사회! 함께 나누는 사회! 협동조합이 그 대안으로 순조롭게 자리 잡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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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면 좋은 참고도서로는 <깨어나라 협동조합>(김기섭, 들녁),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스테파노 자마니 외, 오토북스), <몬드라곤의 기적>(김성오, 역사비평사), <협동조합으로 지역개발하라>(그레그 맥레오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김태열 외, 그물코), <협동조합 참 좋다>(김현대 외, 푸른지식), <협동조합시대>(김용한 외, 지식공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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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경실련은 2013년 1월중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속 공개강좌 ‘함께사는 사회, 99%의 경제, 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를 개설할 예정으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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