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마르칸트 소고(小考)
[기고]사마르칸트 소고(小考)
  • 거제인터넷신문
  • 승인 2012.12.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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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대학교 박상철

사마르칸트(Samarkand)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남동쪽에 있는 도시로 옛날 14∼15세기 큰 번영을 누렸던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다. 현재 타쉬켄트(Tashkent)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나 실크로드를 회상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은 사마르칸트, 부하라(Bukhara), 히바(Khiva), 샤크리얍즈(Shakhrisabz) 등을 방문하게 된다.

사마르칸트는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레기스탄광장, 샤히진다(Shahi-Zinda), Gur Emir Mausoleum, 고구려(신라) 사신도로 유명한 아프로시압(Afrosiab) 박물관 그리고 비비하눔 모스크(Bibi-Khanum Mosque), 울루그벡 천문대 등으로 유명하다.

레기스탄(Registan) 전경/Ulug Beg Madrassah/Shir Dor Madrassah/Tillya Kari Madrassah
이슬람문화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크게 3M으로 분류하여 나타낼 수 있다. Mosque(사원), Madrassah(신학교) 그리고 Mausoleum(묘, 사당)이다. 레기스탄 광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세 개의 건축물(울루그벡 마드라샤, 쉬르도르 마드라샤, 틸라카리 마드라샤)이 한눈에 들어온다.

'레기'는 모래, '스탄'은 땅, 국가라는 뜻으로 레기스탄은 모래의 땅이라는 의미처럼 옛날에는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다고 한다. 왕에 대한 알현식, 열병, 죄인의 처형 등 공공집회가 열렸던 광장으로 티무르 시대에는 대규모 노천시장이 있었으며, 그의 손자인 울루그벡에 의해 1420년 비로소 울루그벡 마드라샤가 세워지기 시작하여 1636년 쉬르도르 마드라샤, 1647년 틸라카리 마드라샤가 세워졌다.

울루그벡은 왕이자 학자로서 유명했으며 처음 신학교로 출발했으나 후에는 천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의 연구소로 이용되었다. 쉬르도르는 '사자가 그려졌다'란 뜻으로 어린 사슴을 쫒는 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우즈벡 화폐 중 200숨짜리 지폐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Gur Emir Mausoleum 전경
‘구르'는 묘, '아미르'는 지배자, 왕이라는 뜻으로 구르 아미르는 ‘왕의 묘’를 뜻한다. 위대한 정복자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손자 등이 묻혀있는 티무르 왕족의 묘이다. 티무르는 1404년 자신이 아끼던 손자 무하마드 술탄이 오트라르 원정에서 죽은 것을 추도하기 위해 묘를 건설했으며 티무르 자신도 1405년 명(明)나라를 정벌하려고 떠났다가 병사하여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Gur Emir Mausoleum 내부
건물 외관은 코란 문구로 장식되어 있고 푸른 색 돔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1996년 묘 내부 수리가 완료되어 옛 모습을 되찾았는데 수리에 금 3kg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내부 천정과 기둥은 온통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티무르의 관은 흑녹색의 돌널무덤 형태로 아들 샤로흐, 손자 무하마드 술탄, 손자 울루그벡, 티무르의 스승의 관과 함께 중앙에 놓여있으나 실제 관은 3m 아래 지하 묘실에 같은 순서로 매장되어 있다.

▲Bibi Khanum Mosque 전경
비비하눔 사원은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원으로 티무르가 인도 원정을 떠난 사이 중국공주인 비비하눔 왕비가 티무르를 기쁘게 하기 위해 1399년 건축한 것이다. 오랫동안 수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예전의 거대한 위용은 찾아볼 수 없다.

▲Bibi Khanum Mosque 내부
한 때 사원의 면적은 가로·세로 100m가 넘었으며 입구 아치옆에 80m 높이의 미나레트(minaret, 첨탑)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원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사원 건축을 담당했던 페르시안 출신 젋은 포로 건축가가 비비하눔을 사모한 나머지 자신에게 키스를 해주어야만 마지막 남은 건물 아치를 완성시켜주겠다고 했다.

티무르가 인도 원정에서 돌아오게 되어 시간이 촉박해진 비비하눔은 결국 건축가에게 키스(the fatal kiss)를 해 주었고, 귀국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티무르는 격노하여 비비하눔 왕비를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처형시켰고, 건축가를 잡으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메카로 도망을 쳐버렸다.

▲Shahi-Zinda 전경
그 날 이후 티무르는 티무르 제국 내의 모든 여자들에게 얼굴을 베일로 가리도록 명령하였다. 비비하눔 사원을 마주보고 비비하눔 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랑하던 왕비를 처형시키고 난 후 괴로워하던 티무르가 직접 지시하여 만든 묘이며 비운의 왕비인지 초라해 보인다.

▲Shahi-Zinda 내부
아프로시압 언덕의 남쪽에 위치한 사마르칸트 제일의 성지로 티무르 친족과 이슬람 지도자들의 영묘가 많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지금도 순례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건물 양식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은 중앙아시아에서 견줄 곳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샤히진다는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으로 7세기 아랍의 침략 때 생겨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포교를 위해 사마르칸트를 찾은 예언자 무하마드의 사촌형인 쿠산 이븐 압바스는 이곳에서 예배 중 조로아스터 교주에게 습격당해 목이 잘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예배를 마치고 자신의 목을 깊은 우물에 넣어버리고 사라졌다고 한다.

▲Afrosiab Museum
무슬림들은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이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을 위해 그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영묘 건물에서 더 나가면 일반인들의 공동묘지가 있고 그 언덕에서 바라보는 샤히진다의 모습, 사마르칸트의 전경 또한 아름답다.

▲고구려(신라) 사신도
아프로시압 박물관은 사마르칸트 동북쪽 아프로시압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구 소련 고고학자들이 사마르칸트 도성이 있었던 아프로시압 언덕에서 발굴한 고고학 유물들을 전시한 곳으로, 전시된 유물들에서 사마르칸트의 유서 깊은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기념품인 칼을 비롯해 정교한 도자기와 토기, 동전, 전통 의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대표 소장품은 7세기의 아프로시압 벽화(Afrosiab Murals)로 사마르칸트 귀족의 저택 벽을 장식했던 높이 2m 벽화를 통째로 옮겨온 것이다.

이 벽화는 당시 사마르칸트 통치자의 결혼식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왼쪽 벽화에는 흰색 코끼리에 올라탄 공주와 그 수행원들, 가운데 벽화에는 통치자가 각 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그 중에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 당시 사마르칸트와 고구려(신라)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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