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 사태에 부쳐

▲ 진성진 변호사
한 세상살이의 어려움  -현대산업개발 사태에 부쳐-

몇 년 전 KBS 저녁9시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검찰이 이동희 안성시장을 뇌물죄로 구속했는데 그 범죄사실이 ‘관내 골프장 및 건설회사 사장 3명에게 북한동포를 돕는 사업에 수 억 원을 기부토록 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구속하다니, 요새 검찰이 이상해 졌나’, 아니면 ‘그새 법이 바뀌었나’할 정도로 의아했다. 12년의 검사생활과 주로 형사사건을 맡아 변론한 변호사 경력을 포함한 20년의 법조경력을 무색케 하는 뉴스였다. 알고 보니 검찰이 적용한 죄명은 형법 제130조에서 규정한 ‘제3자 뇌물제공’이었다.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나는 그런 형법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그 때 처음 알았다. 이동희 안성시장은 결국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심에서 시장직을 사퇴한 후에야 집행유예를 받았다.

거제시민단체가 권민호 거제시장을 제3자 뇌물제공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현대산업개발에 대하여 전임 김한겸 거제시장이 한 당초 5개월간의 입찰자격제한처분을 1개월로 경감해준 댓가로 현대산업으로부터 거제시에 대한 70억원 상당의 공헌 약속을 받았다는 혐의다. 세상에 똑같은 사건은 없다. 따라서 이 고발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전임 3명의 시장이 돈 문제로 줄줄이 구속되어 고초를 겪은 우리 거제에 현직시장이 또 다시 ‘뇌물’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죄명으로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착잡하다. 아울러 이 지역 법조인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몇 가지 안타까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언론에 공개된 시민단체의 고발장에 의하면 현대산업개발에서 이 사건 경감신청을 하면서 ‘5개월간의 입찰제한에 따른 수주손실액이 1조2,629억 원이나 되니 이를 감경해주면 거제시를 위하여 70억상당의 공익사업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점이다. 형사법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공공연히, 그것도 문서로 ‘뇌물공여의사표시’를 한 셈이다. 년 매출 3조원이 넘는 굴지의 건설회사인 현대산업이 법을 알고도 이런 제안을 했다면 그 강심장에 놀랍고, 법을 몰라서 이런 제안을 했다면 그 무지함에 더욱 놀라울 뿐이다.

둘째, 이런 황당한 제안에 대하여 거제시가 적극 호응, 그에 대한 이행장치로 공증을 받고 속전속결로 당초 5개월의 제재기간을 1개월로 경감처분을 해준 점이다.
거제시의 이런 조치는 우선 실리적 측면에서도 문제다. 현대산업개발의 셈법에 따르면 거제시에 70억원 상당의 사회공헌 약속을 하고 대신 1조원의 수주혜택을 받았으니 장사치고는 엄청 이문을 남겼고, 반면 거제시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셈이다. 행정의 일관성과 신뢰성 측면에서는 더욱 문제다. 현 거제시장은 현대산업이 제기한 본건 행정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전임시장이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이어 받아 항소심에서 승소를 이끌어 내어 당초 행정처분(5개월간 제재)이 정당하다는 사법적 확인을 받아냈고, 정황상 대법원의 승소확정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결국 본건 감경처분은 거제시장이 그간 소송당사자로서 한 역할과 모순되는 것으로 운전으로 치면 목적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갑자기 유턴(U-turn)을 한 셈이다. 더욱 문제는 이 급작스런 유턴이 형사법적으로 불법 유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는 이에 대한 사법적 검증이다. 현대산업의 제안은 돈으로 풀이하면 거제시장이 경감처분으로 1조원의 수주혜택을 주면 70억원을 거제시에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이 형법 제130조 소정의 ‘부정한 청탁’에 해당되는지가 검찰수사의 관건이다.

셋째, 이번 사태는 현대산업 측과 거제시 측의 법률가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였다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현대산업이 위와 같은 제안을 할 때 고문 변호사 등 법무 팀에서 그 적법성 여부를 검토하였는지 의문이다. 거제시 고문변호사들의 태도는 더욱 무책임하다. 거제시는 위와 같은 현대산업의 제안에 대하여 3명의 고문변호사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였는데 한결같이 ‘본건 경감처분과 현대산업의 사회공헌약속이 관련성이 없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로 답변하였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모범답안이지만 실로 무책임한 답변이다. 거제시의 법치행정을 위하여 위촉된 고문변호사라면 위 답변내용에 이어 ‘그러나 본건의 경우 사회통념상 양자 간의 관련성을 부인하기 어려우므로 절대불가임’이라고 명시했어야 했다. 변호사는 당사자의 이익을 위하여 때로는 ‘고용된 총잡이’ 역할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①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②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변호사법 제1조의 규정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새삼 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지난 3년간 시정을 맡은 소회에 대하여 ‘청렴을 모토로 앞만 보고 달려 왔다’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권 시장의 그러한 각오는 전임 시장들의 연이은 비극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은 데 따른 것이리라! 실제로 거제시청 직원들의 전언에 의하면 권 시장 재임 이래 승진인사를 두고 전처럼 뇌물인사라는 뒷말이나 수군거림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이렇듯 역대 가장 청렴한 시장으로 평가받는 현시장이 뇌물죄로, 그것도 70억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뇌물혐의로 검찰수사를 앞둔 역설적 상황에 새삼 한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느낀다.<외부 필진 칼럼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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