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계약 취소·인도시기 연기·물동량 감소 '3각 파도'

한국일보 2월 23일 인용보도

▲ "글로벌 위기 무풍지대 아니다" 위기감 확산
▲ 기술 공동개발·디자인 수출 등 활로찾기 분주


▲ 대형조선소 지난해 수주액과 올해 수주 전망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은 최근 그리스 해운사로부터 벌크선(곡물ㆍ철광석 운반선) 2척의 제작을 취소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세계 5위권인 STX조선도 이달 초 유럽 선주에게서 선종을 바꾸는 형식으로 인도 시기(2010년 6월→2011년 11월)를 1년5개월 가량 늦춰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에도 불구, 3~4년분 일감을 미리 확보해 '산업계 무풍지대'로 불렸던 대형 조선소에도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주로 유럽 지역에 몰려있는 대형 선주들 가운데 금융위기 여파로 선박 주문을 해놓고도 돈을 못 구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조선소들은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외국 조선소에 노하우 전수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금융위기가 수그러질 때까지는 위기감이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외국 선주들이 국내 조선소에 의뢰한 선박 제작을 취소하거나 혹은 인도 시기 연기를 요청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이스라엘 해운사 짐라인 측으로부터 초대형 컨테이너선 9척 제작을 1년 정도 늦춰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번 주 방한하는 짐라인 임원들과 관련 내용을 협의할 예정이다.

현대삼호중공업도 같은 회사로부터 연기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선박 제작 변경 사항은 발주사와 조선소 간의 비밀 계약이라 대부분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계약 취소나 변경은 예상보다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복병은 동유럽발 2차 금융위기 우려다.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의 부도 위험 증가로 주요 투자국인 서유럽 국가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결국 유럽 선주들의 자금줄이 막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운업계 불황도 대형 조선사들에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물동량 감소는 선박 임대료 하락과 함께 조선 수요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해운시황 지표인 BDI(벌크선 운임 지수)는 이미 고점 대비 10분의 1 밑으로 떨어졌다.


물론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3~4년분 일감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단박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제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올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된다"며 "일부 연기 요청이 있지만, 3년 이후 인도되는 계약이라 1년 정도 더 늦춰준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커진 건 사실이다. 현대, 삼성, 대우 등 '빅3' 조선소를 포함해 STX조선, SLS조선,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등 중대형 조선소들은 20일 지식경제부와의 간담회에서 발주사들의 중도금 미지급 상황 등을 설명했고, 정부는 수출입은행을 통해 1조6,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형 조선소들은 3~4년 뒤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을 의식, 새 활로 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19일 러시아와 조선소 생산능력 확대, 설계기술 공동 개발ㆍ건조 등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TX는 최근 STX 유럽조선소를 통해 일본 조선업체에 디자인을 수출하기로 했고, 대우조선해양은 오만 정부와 자국 수리 조선소 설계 및 장비 구매 등에 관한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삼성경제연구소 배영일 박사는 "현금 보유와 수주 잔량이 많은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당장 위기를 맞지는 않겠지만, 동유럽발 금융위기 등으로 수주 취소ㆍ연기가 본격화하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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