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차량 끝내 잡지 못해…"못난 친구를 용서해라"

▲ 이상문 시의원
거제시 연초면 임전마을은 깨밭골로 불립니다. 깨밭골 점쟁이는 이 섬 안에서 신통한 점쟁이를 일컫는 보통명사화되어 있습니다. 추앙받던 점쟁이는 깨밭골에서 점을 쳐 왔습니다.

7년여 전, 고교친구 하나가 야밤중 뺑소니차에 치여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사고차량을 추적하던 목격차량이 도주차량을 시야에서 놓치고 경찰에 신고하는 데까지 10여 분이 소요되어 도주차량이 거제도의 유일한 탈출구인 거제대교 검문소를 벗어날 순 없었으며, 경찰측도 그 차량은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하여 친구들 30여 명은 사설 도주차량 검거 본부를 구성했습니다.

인구 18만 명, 400제곱킬로미터의 거제도를 완전히 뒤져서 도주차량을 찾아낸다는 원을 세우고, 거제거주친구들은 매일 퇴근 후 자정까지, 재외 친구들은 주말 밤샘 근무령을 스스로 받아 들였습니다. 소요되는 경비도 추렴했습니다. 현상금도 걸었습니다.

30만장의 전단은 1읍 9면 6동의 집집마다 배포되었으며, 거제도의 차량 진입이 가능한 모든 도로변은 조사되었고, 차량진입 가능한 집집마다 차고, 창고를 확인했습니다.

목격자가 말한 도주차량 번호와 유사한 것을 모두 추려 도주차량과 차량도색이 같은 부산번호는 부산 친구들이 다 뒤졌으며, 스쿠버다이버 클럽의 자원봉사를 받아 바다 밑 까지 뒤졌으나, 그 차량은 찾아 지지 않았습니다.

근 한 달여에 걸친 추적도 실패로 돌아갈 즈음, 친구의 친구 하나가 깨밭골 점쟁이의 점괘를 들고 고개를 다리 사이에 처박고 있는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더 이상의 가능성에 대해 체념한 상태의 우리는 그 빠진 물속의 지푸라기를 잡고 싶었습니다.

점쟁이 왈 도주차량은 한 폐차장에서 비싼 돈을 들여 찌그러진 차체와 깨어진 유리창을 갈고 다음 날 낮 유유히 거제대교를 빠져 나갔으며, 그것을 수리해 준 이가 모 정비공장에 근무하는 몇 살 몇 살 먹는 0모, 0모이다 라는 점괘였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범인은 잡아 놓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차량을 고쳐준 자를 아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점쟁이가 가르쳐 준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만일 점괘가 틀릴 경우 그 두 사람의 도끼질을 피하기 위한 면담자 구성과 질의 응답서에 대한 대책회의 후, 비장한 각오의 3인이 그들을 하나씩 만났습니다. 어쩌면 점괘를 믿고 범죄인 취급을 하느냐는 반론이 안 나오게 익명의 제보자가 있었음을 전제로 그들을 신문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차라리 우릴 때려죽일 듯이 달려들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랬으면 점괘의 환각에서 일찍 깨어날 수 있었으며, 의심한 우리나 제보자로 추측되는 자들이 도끼 맞을 공포에 시달리지나 않았을 텐데...

그들은 정비공장을 그만 두고 길거리에서 불법 정비를 해 주고 있었던 터라 그 약점 때문에 범행과 관련이 없으면서도 너무나 방어적이고 죄를 지은 듯이 말하고 표정 또한 불안했습니다. 첫 만남 이후 우리의 전 인력은 점괘 수사에 돌입했습니다. 그들의 집은 24시간 감시되었으며, 그들의 일거일동은 차량 4대로 추적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거제대교를 통과하는 때를 검거일로 잡았습니다.

거제대교에는 덩치 좋은 네 친구가 주둔, 검문소 도움을 얻어 체포키로 하고, 다른 4대의 차량은 그들을 추적하다 대교쪽으로 차량이 향배를 하는 때, 비상령을 내리기로 하여 지난했던 한달 여의 추적을 영광스럽게 마감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던 날 드디어 추적당하던 차량 중 한 대가 대교를 향했습니다. 저는 급기야 전 차량과 인력을 대교로 집결하라는 전화를 본부와 나머지 차량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옆에 앉아있던 장교 출신의 친구가 '에레기 자슥아 먼 비상령을 그렇게 내리냐? 전화기 이리 주바바 븅신시키!' 하면서 빼앗듯이 가져간 전화기에 대고 하던 말.

"여기는 1호차 대교를 봉쇄하라. 대교를 봉쇄하라"

봉쇄된 거제대교에서 잡힌 그 도주차량 정비 용의자는 참을 수 없는 울분을 토로하며 덩치 좋은 우리 친구 넷을 때려죽이려고 달려들었으니...깨밭골의 환각은 거기서 춘몽이 되었으며, (우리가 얻은 점괘는 거제 원조 깨밭골 점쟁이의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우리는 결국 도주차량을 검거할 수 없었습니다. 백미러 한쪽과 깨진 유리 파편, 차량의 페인트라는 엄청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도 우리도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먼저 간 우리 친구의 장례날 친구 50여 명이 상복을 입었으며 통곡하였습니다. 장난끼 많고 욕 잘하던 의리의 상징이던 그 친구를 보내는 길에 쏟아져 나온 우리의 오열들이 남은 우리들의 우정에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당시 백수나 다름없이 1달여를 합숙하였던 친구들, 직장과 사업을 문닫듯하고 수색에 나서준 친구들, 주말이나 밤마다 일을 함께 한 친구들, 적지 않은 돈을 모아 준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먼저 간 내 친구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빕니다. '광아! 이 못난 친구를 용서해라. 내가 저승가거든 부디 잘 봐 주라. 너를 사랑했고 존경했다. 내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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