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석 전 거제교육장
▲ 윤동석 전 거제교육장

궁핍했던 1960년대 어머니들이 고난의 세월을 희생과 헌신으로 맞서 가정과 삶의 정신을 일으키고 나라를 구했다. 구로공단의 여공에서 자기의 삶을 담담하게 소설화한 신경숙 소설가가 그러했고 여공에서 오페라 무대의 프리마돈나가 된 성악가 이점자 교수가 그러하였다. 또한 혼혈아로 2006년 미국 풋볼의 영웅 한국계 하인스 워드의 뒤에는 모진 시련을 극복한 장한 김영희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주역이 되었던 새마을 지도자의 절반이 어머니들이었다.

최초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인 경북 청도군에서 일어난 천사 어머니 홍영매여사의 삶에 대해 휴머니즘한 강연 내용이 가끔 떠오른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는 그 즈음 필자는 모교인 실업계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향토인으로 새마을운동 보급을 위한 새마을교육 업무를 맞게 되어 중앙 새마을교육 강사요원 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인간적이어서 지금까지 머릿속에 그때의 눈물겨운 공감속의 일이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부산의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기독교계통의 여고를 졸업한 홍영매여사의 억척스런 삶에 대한 이야기다. 딸들만 가진 가정 속에 어머니의 아들 선호 타령에 그만 고교졸업 후 고아원 보모 직업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쟁터에서 한쪽 팔을 잃고 왼쪽 다리를 못 쓰는 목발의 6.25 상이용사가 아내와 사별한 가운데 불우하게 태어난 올망졸망한 5남매의 절박한 환경에 놓인 이야기를 전해 듣고 1962년 23세의 처녀의 몸으로 아이들을 위하여 한평생 헌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상록수 소설처럼 농촌 이웃을 위해 주변과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부산에서 경북 청도 현리마을의 가난한 농촌에 허물어 가는 오두막살이 그 집을 찾아 갔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들 아버지는 난폭한 성격에 실의에 빠져 술로서 세상을 한탄하다 술주점뱅이로 변해 아이들의 돌봄은 완전 뒷전 상태였기에 가시밭 같은 험난한 삶의 연속이라는 것은 뻔한 현실이었다.

씻기고 입혀주는 사람도 없으니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우선 집안 청소부터하면서 고아원에서 가져온 옷가지를 챙겨 입혀주고 정성과 사랑으로 다듬어 주어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가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처음 얼마간은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감싸는 가족 분위기를 만드는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남편과 마을에서 견디기 힘든 창피스런 모욕적인 말과 편견 오해의 눈초리에도 곧은 의지와 정들면서 어느새 진심으로 받아들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가난에 찌들어 앞이 막막하던 그 시대 세상의 현실 속에서 높은 인구증가율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그 시절에 처녀로서 자기 뱃속에 잉태한 아이를 지워 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자로서의 절박하고 처절했던 그 시대 상황, 5남매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키우기 위해서 끝내 남편 모르게 뱃속의 아이를 지워 버린 일은 그 천사 같은 어머니에게 하늘은 죄인이라 할 수 있었을까!

점차 남편도 이웃도 감동되어 농촌 생활 속의 방탕한 술판과 노름은 깜쪽 같이 사라지고, 홍영매여사의 근검절약 정신으로 일기처럼 쓴 가계부는 그 마을 전체로 번져 알뜰한 가정 속의 어머니 분위기로 일시에 변해 버렸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여사는 그 마을에 닥치고 있는 일의 고정관념, 사회통념의 벽을 깨는 것이었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전국 최초 새마을운동 발상지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청도군 50여명 중 유일한 여성 새마을 지도자로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붕도 개량하고 마을 안길도 단장하였다 한다.

홍영매 여사의 역할로 마을 전기도 최초로 들어오게 하고 저축운동, 공동교육기금조성으로 불우한 청소년 교육사업, 마을부녀회 조직의 마을 구판사업과 협동 양돈장을 운영해 남은 이익금으로 마을 공동기금이 날로 불어났다고 한다.

엄마로서의 하염없이 흘린 눈물은 큰딸이 결혼해 가면서 부엌에 진정어린 엄마에 대한 감사 눈물의 자국을 남긴 딸의 편지쪽지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천사 엄마! 버려진 5남매 잘 키워 주시고 불쌍한 우리 아빠 살려주신 천사 엄마’라고 불러주는 감사 편지는 듣는 모든 이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 이였다.

필자를 포함 듣는 사람 모두 ‘사람이 아니고 천사의 화신이라’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내면의 감성을 호소하는 휴머니즘을 일깨워준 강연이였다.

짧은 시간동안 보아온 30대 중반 그녀의 성품은 무척 활달했고 자신감 넘치는 여장부로서 그 시절 대한민국 농촌을 계몽하는 다부진 어머니상 이었다!

최초 전국 새마을 지도자로 뽑혀 청와대에서 사례 발표 중 박정희 대통령도 3번이나 울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내용이 알려져 여성 새마을 지도자 홍영매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순재, 윤연경이 주연을 맡고 최불암, 강부자 사미자 등 최고의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여 불굴의 어머니상을 그려낸 ‘어머니’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1976년 제15회 대종상영화제 대통령상에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조연상(장동희)을 수상하였다.

2013년 6월18일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되었지만 지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이념의 논리에 부딪쳐 새마을 운동 지우기에 나선다 해도 천사 엄마 같은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적 유산까지 지워지지 않을까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분은 지금 희수(喜壽)를 훌쩍 넘긴 할머니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비록 우리가 처한 현실은 정치적 이념에 매몰되어 있다하더라도 세계의 문화유산에 등재되고 가난을 벗어나 우리의 삶의 바탕에 근본이 되는 숭고한 정신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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