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칠진농악의 발자취에 대해

▲ 정옥식 거제칠진농악보존회 회장
저는 우리 것이 좋아 어릴 때부터 장평 두레 농악에 몸담아 온지도 어언 45년이란 세월이 흘렀나봅니다. 그 세월 훨씬 이전부터 참여는 했으나 실지로 장구를 치며 함께 한 것이 1965년도 였습니다. 윗 선배들을 따라 해마다 지신밟기정월대보름 행사 등 꾸준한 노력 끝에 거제무형 문화재인 거제칠진농악에 몸담아 오다보니 지금에 와서는 거제칠진농악의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거제 칠진농악은 임진왜란 당시 아군이 많음을 보이기 위한 시위 전술로 횃불을 들고 농악을 쳐 왜적을 교란 시켰던 것으로 알려져 민속무형문화재 제도가 설립 된 후 1975년 거제군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1976년 거제군에서 지원과 노력에 의해 (고)김관석옹의 상쇠로 거제칠진농악을 재연 할 수 있게 되어 그 해 경남민속 경연대회에 참가했었고 1978년엔 진해 대회에서 장려상을 탔으며, 1989년도에는 마산 공설운동장에서 개최 된 경남민속 경연대회에서 특상을 받아 경남 도 대표로 대전에서 열렸던 전국 대회에 각 시 도별 농악들과 어깨를 겨루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장평농악을 이끌던 회원들과 합류하여 거제칠진농악을 경연대회 때 마다 출전하여 왔으며 장평 두례 농악회원들의 고령화로 거제칠진농악 상 장구로 활약하던 제가 꾸준한 노력 끝에 상쇠였던 (고)김관석옹의 상쇠기능을 전수 받아 1994년 2월 3일 장평회관에서 1차 수료식에 이어 2월 8일 장평농악 발대식을 가져 회장으로 시에서 배려해준 공간에서 무료로 지금까지 많은 문화생을 배출시켜 거제칠진농악 전임자들의 고령화와 작고 등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것을 1996년부터 열심히 갈고 닦아 130명의 인원으로 1998년 옥포대첩과 시민의 날, 거제문화 한마당 등에서 시연 발표회를 가짐으로서 그해 11월 26일 거제칠진농악 기능보유자 (고)김관석옹으로부터 기능보유자 전수식을 가짐으로서 명실공히 거제칠진농악 기능보유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동안 애쓰고 힘써 왔지만 열악한 재정으로 중단 되었다가 무형문화재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 2006년부터 성포중학교에 거제칠진농악을 전수시켜 2007년 면민의 날 시연과 시민의 날 입장식과 2008, 2009년 옥포대첩행사에 시연 발표회 겸 공연을 하여 많은 박수갈채를 받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포중학교는 2009년 학생 대회에서 거제 칠진농악으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아 경남 도 대회에서 입상하는 영광을 안았으며 지난 10월 23일 아주 공설운동장에서 거제문화원 주최로 개최된 거제문화 한마당 농악 경연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같은날 사등면 전통민속 농악은 처녀 출전으로 은상을 수상하여 거제칠진농악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거제칠진농악의 발생지가 사등면 지석이기 때문에 사등면에서 꼭 이어가야겠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연찮게 제가 2004년도 사등면으로 이사를 와 평소 지역개발과 거제문화에 대한 애향심이 남다른 김상계 면장님의 특별한 관심으로 사등농협과 사등면 발전협의회의 아낌없는 지원과 협조로 시작되어 이장협의회, 새마을지도자, 새마을 부녀회장님들의 참여 속에서 주민자치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의 배려로 농악교실을 열게되어 1차생과 2차생을 무료로 수료시켜 12월 11일 창립총회를 갖고 12월 16일 거제칠진농악 보존회 창단식을 가짐으로 거제칠진농악 보존회가 새로 태어났습니다.

▲ 거제칠진 농악 보존회 회원
거제칠진이란, 1470년(약540년)때 옥포진, 조라진, 율포진, 영등진, 가베량진, 지세포진, 장목진등에서 이순신 장군이 방어 또는 선전했음은 물론 옥포진에서 첫 승리를 거둠으로서 옥포 대첩이란 이름으로 해마다 4월 16일 전후로 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제 열심히 갈고 닦아 사등면민의 날은 물론 시민의 날 시연으로 인정받아 경남도 민속경연 대회에서 입상하는 그날까지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농악을 시작한지가 4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실제로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교 3, 4학년 때 선조들의 농악을 따라 짚신을 어깨 또는 목에 걸고 논두렁을 기어 오르내리느라 옷을 더렵혀 어머님의 꾸중으로 혼이 난 적도 있었으나 농악을 하다 쉬는 시간이면 나뭇가지로 장구를 한번 쳐 소리내보는 날이면 제일 재수 좋은날로 여겨져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져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상당히 일찍부터 농악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장평 두레농악이 1946년 1월10일 발족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상당히 오래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도 당시 2대 소임인 (고)정치규(당시24세) 선친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부터는 선친의 뒤를 이어 더욱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장평농악 발대식을 계기로 지금까지 50차가 훨씬 넘는 수료생을 배출하여 2,000여명 이상의 문화생이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특별 강의 내용을 더듬어보면 수양 어린이집, 계룡 어린이집, 연초초등학교, 수월초등학교, 장목 초등학교, 국산 초등학교, 동부 초등학교, 성포 중학교, 중앙 고등학교, 신현농협, 하청농협, 장목농협, 동부농협, 남부 자치센타, 능포동 자치센타, 동부면 자치센타, 사등면 자치센타, 그 외 거제자활센터 또는 운동장 공간에서 수많은 문화생을 배출시켰습니다. 여기에는 말없이 묵묵히 함께 가르치며 활동하고 지켜준 아내(송희영)의 내조가 훨씬 컷 다고 봅니다.

지금은 성포중학교(거제칠진농악), 동부초등학교(영남사물), 동부초등학교 병설유치원(농악가락), 사등면 주민자치센타에서 지역여건상 월~금까지 일반회원들을 중심으로 2010년 정월 거제시민 안녕 기원제와 정월 대보름 소원을 빌며 달집태우기를 계획하고 지신밟기 연습을 매일 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바램이 있다면 거제칠진농악 및 다목적 전수관이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소리 나는 물건들이라 아무 곳이나 연습할 수 없어 때로는 계곡(고현근처에서는 수월주지골), 산기슭(사등면엔 폐왕성근처)을 찾아다니며 연습하다 보니 눈물나게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마음놓고 드나들며 시간 나는데로 열심히 연습할 공간 마련이 제일 바램인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 시, 군에는 고성 오광대를 비롯한 농악전수관이 있는데도 우리는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마지막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거제칠진농악을 계승발전 시켜야겠다는 각오는 쉬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사등면민은 물론 관심 있는 시민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거제무형문화재인 거제칠진농악을 지키고 이어 갈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지도편달을 바라는 바입니다. 이제 거제칠진농악도 원형을 깨뜨리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고 악보에 맞는 기량과 전술적인 농악을 연마할 때라고 생각되어 지금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더욱더 흥겨운 가락을 연구 보강하여 악보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거제도 옥포대첩을 거제옥포대첩 더 나아 가서는 전국적인 옥포대첩으로 발전 되어야 하며 문화유신의 꽃이기도 한 옥포대첩을 더 발전시키고 거제 칠진노악도 계승발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간이나 혼자의 힘으로는 힘든 일이어서 관·민이 함께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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