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병원 거제요트학교장

요트와 거제와의 인연

▲ 김병원 거제요트학교장
해군(해병대)에 복무하면서 바다와 연을 맺게 되었고, 해양레저스포츠에 눈을 뜰 수 있었다. 1983년 9월, 모교인 해성고등학교에 부임하면서, 이를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거제도의 수려한 자연, 아름다운 바다, 풍부한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해양레저스포츠, 바로, 윈드서핑을 육성하고 발전시켜 보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운면 소동마을 (주)유공 해양훈련장에서는 작고한 정두영 씨가 지역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윈드서핑을 강습 중이었다. 필자도 본 훈련에 참가하였고, 거제지역 해양레저스포츠를 키워 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듬해인 1984년, 해성고에 윈드서핑(요트부)를 창단하면서, 거제도에 본격적인 해양레저스포츠가 뿌리를 내린다.

이어 1996년 6월 거제시청 요트부 창단을 시작으로, 2008년 지세포중학교, 2009년 일운초등학교 요트부 창단이 이어진다. 이로서 초,중,고 그리고 일반 요트부를 가진 국내 최초의 자치단체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다. 올해로 15회째 열린 거제시장기 전국윈드서핑대회도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전국 최고 수상실적과 세계대회로 도전

1987년 전국체육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3년 만의 짧은 훈련으로 전국 3위의 영광을 안게 된 것, 윤성수 선수 였다. 그것도 고등학생이 일반선수들과 겨루었던 경기에서. 이 대회를 계기로 해성고는 전국에서 인정받는 윈드서핑부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울산, 창원, 마산, 통영, 남해 그리고 고성지역으로 윈드서핑의 보급을 넓혀 나간다. 결실은 1988년경남윈드서핑협회 창립으로 열매를 맺는다. 이로서 윈드서핑의 체계적인 육성과 선수들의 훈련을 지원하게 되고, 경남의 윈드서핑 발전은 전국에서 으뜸으로 성장한다.

이에 힘을 업은 해성고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를 많이 배출하게 된다. 현재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이태훈(경원대 대학원 재학, 2006년 국제요트대회 챔피언,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출전 15위 등) 선수는 거제지역 출신으로 해성고에서 기량을 닦은 선수로 요트종목으로 거제를 세계에 알리고 있는 인물이다.

선수출신 중에는 1기생인 윤성수(위네이버 해양스포츠 장비 회사 근무 중), 윤해광(현 거제시청 요트선수)과 유정인(윈드서핑 박사 1호)박사는 강단에서, 한호준, 장문영 선수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이재철 선수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해양스포츠 전문 강사로 자영업을 하면서 세계대회를 직접운영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통영보다 불리한 거제지역 요트

울산이 경남으로부터 분리되면서 경남요트협회가 통영에 자리 잡게 되면서 현재까지 14년간 경남요트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때부터 거제지역은 예산지원은 물론, 행정과 선수 관리 등 제반 업무가 상대적으로 통영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잘 아시다시피, 통영은 요트마리나 시설로 국내외 요트인들이 몰려들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체전 요트종목까지 유치하게 된다. 통영은 경남요트협회 유치를 시작으로 행정과 유기적 협조체제로 요트부문에서 급성장을 이룬다.

협회 초창기 통영시와 시의회의 원만한 관계는 통영 요트발전에 빼 놓을 수 없는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다. 이는 경남지역 요트인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나있다. 오는 10월 15일부터 사흘 간 통영 도남항에서 열리는 제4회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도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해안 시대의 개막과 거제요트학교 운영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남해안 개발프로젝트. 이를 계기로 바다를 끼고 있는 연안 시군은 해양레저스포츠에 눈독을 들이며 앞 다퉈 경쟁하게 된다. 지역발전과 관광객 유치라는 명목으로. 그 실천 프로그램이 요트학교 개교였다. 우리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마산, 통영, 고성 그리고 진해에 이어 다섯 번째로 문을 열게 된 것.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규모나 시설, 장비 확보에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일운초등학교, 지세포중학교, 해성고등학교 요트부 예산도 너무 부족한 현실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 지난해 개교한 거제요트학교 예산운용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 개교 이후 요트강습을 희망하는 시민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 그 중에서도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20%를 상회하고 있다. 이렇게 급격히 늘어나는 요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거제요트학교 인근에 부지를 확보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힘겨운 현실이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앳된 소녀들이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열악한 환경에서도 피어난 아름다운 영광을. 별로 관심 가져 주지 않았던 여자축구라는 종목에서. 거제지역의 어린 남여 선수들은 이번 17세 이하 FIFA여자축구월드컵에서 우승한 선수들을 꿈꿀 것입니다. 그들을 롤 모델로 삼을 것입니다.

그리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할 것입니다. 10년 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영광을 재현하리라는 것을. 거제의 소년소녀들이 해낸다는 말입니다. 거제지역 지도자들과 출향한 거제를 사랑하는 향인 여러분! 열악한 환경에서 거제요트를 세계의 무대에 올리고자 노력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반드시 해내리라 자신합니다. 올림픽 우승처럼 우리지역의 요트(윈드서핑)선수들이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윈드서핑 인생 이야기

다음은, 윈드서핑에서 전설적이고 세계적인 중년 여자선수의 애틋한 ‘윈드서핑 인생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아울러 거제지역에 맞는 해양레저스포츠인 윈드서핑(요트) 선수 육성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엘리트 선수이기만을 고집하는 이탈리아의 Alessandra SENSINI 선수. 며칠 전 끝난, 덴마크 2010년 RS:X 세계선수권대회 최종 성적표를 보면 나이가 많은 한 여자 선수가 출전, 여자부에서 2위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나이 많은 여자선수를 한번 주목할 만하다.

이름은 Alessandra SENSINI라 하고 이탈리아 선수. 이 선수는 윈드서핑을 한지 오래되었고, 그 동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좋은 성적을 내어 이름을 날리곤 하였지만, 그보다 아마추어 엘리트 선수이기만을 고집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윈드서핑 세계로 살아가기 때문에 한번 관심을 가져 볼만하다.

Alessandra SENSINI는 1970년 이탈리아 남부 해변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주순안(전남여수 출신) 선수와 홍콩의 리라이샨 선수는 모두 1970년생 동갑내기다. 이들 동갑내기 3 명선수는 나이뿐만 아니라 신장이나 체격 등에서도 닮은 점이 너무 많다.

SENSINI는 어릴 때부터 윈드서핑을 시작, 13세 때 이탈리아 전국규모 체전에서 1등을 하여 선풍을 일으키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22세 때 1992년에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선발이 되어, 바로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우리나라 주순안 선수를 제외한 홍콩의 리라이샨 선수와 함께 출전하여 이탈리아 SENSINI 선수가 7위, 홍콩의 리라이샨 선수는 11위를 하였다.

올림픽이 끝난 후 리라이샨은 홍콩정부의 지원을 받아 특별훈련을 시작하여 급성장 하였으며,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대회에 우리나라 주순안 선수와 함께 동갑내기 세 선수가 모두 출전하였다. 그동안 우리나라 주순안 선수에게 뒤지고 있던 홍콩의 리라이샨 선수였지만, 네덜란드 출신의 전담코치와 함께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특별훈련을 해온 성과를 나타내면서‘홍콩의 리라이샨’선수가 드디어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이라며 난리가 났으며, SENSISNI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나, 어깨를 나란히 하던 우리나라 주순안 선수는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너무 없었으며, 비인기 종목으로 국민들의 무관심속에 예상외의 13위에 그쳤다. 그때 리라이샨 선수의 금메달은 홍콩에서는 대단했다. 너무 감동적이라 이를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으며, 홍콩이 1950년부터 올림픽에 출전시켜 온지 50년 만에 얻은 첫 금메달이었다. 시상식에서 홍콩국기가 올라가고 홍콩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이 방송을 보기 위해 그 시간 홍콩거리는 차량들이 정지되고, 모든 홍콩 국민들은 TV앞에서 ‘홍콩은 영원하여라’며 눈시울을 적시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1년 뒤부터 홍콩은 중국의 지배를 받기로 되어있는 시점이라 홍콩국민들 모두가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이란다. 독립된 조국이라는 것이 그리워지는 시기에 올림픽 무대에서 홍콩국기가 올라가고 국가가 연주되니 감동이 되었으며, 홍콩의 영웅 리라이샨 선수가 귀국하는 날 비행기에서 내릴 때 붉은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 연주는 물론 홍콩정부 삼부요인들이 모두 공항으로 나와 눈물 흘리며 마중을 했다고 한다.

그 다음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세월은 흘러 동갑내기 세 선수의 나이가 이제 30세가 넘었으나 이번 올림픽에도 세 선수 모두가 출전하여 두 번째로 또 한번 맞붙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라이샨 선수와 주순안 선수는 결혼을 한 상태로 출전하여 두 선수는 사실상 선수생활은 접은 상태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의 SENSINI선수가 드디어 영광의 올림픽 금메달을 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더 이상 목표가 없어져 선수생활에 대한 열기가 식어지기 마련인데, SENSINI 선수의 열정은 오히려 올림픽 금메달이후 열정이 불붙기 시작한다.

더 열정적인 선수로 성장하면서 크고 작은 각종 세계 윈드서핑대회에 출전하여 많은 메달을 획득한 것은 다른 선수들과는 특이한 승부건승이라 생각한다. 생활비가 없어 스폰서가 제공하는 광고를 달고 프로대회에도 간혹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마추어 엘리트선수로서 올림픽종목 원 디자인 보드 레이스만을 고집한다.

흐르는 세월 속에 나이는 계속 많아져 가지만 그래도 아마추어 현역 엘리트선수로서 원 디자인 보드 레이스에 계속 도전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회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그해 윈드서핑에 관한 최고 의결기관인 ISAF 윈드서핑 위원(committee)에 임명되어 지금까지 위원자격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 후 4년이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회에 38세의 나이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세계를 또 한번 놀라게 하였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만 국가대표로 5회 출전을 하였으며, 4개의 메달(동, 금, 동, 은)을 획득하는 등 그 외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메달 등 수 없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경기 성적보다는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녀의 아마추어적 윈드서핑에 대한 열정이라 할까 프로대회에는 마음이 없고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 엘리트선수들 대회만을 고집하면서 자기만의 ‘윈드서핑 세계’로 살아가는 그녀의 남다른 ‘윈드서핑 인생이야기’다.

이제는 나이가 50을 바라보는데 몇 년 후에 있을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출전하고 싶단다. 그러나 출전하기 위해선 이탈리아가 올림픽 출전권을 따야 하고 또 자신이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이 되어져야 한다. 올림픽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데 혼자서 5번이나 국가대표를 해왔으니…

어쨌든 본인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더구나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그것이 자기 인생의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아니기를 기대한단다. 이제 언제쯤 은퇴할 것인지 물음이 많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 윈드서핑을 타면서 자기만의 ‘윈드서핑 인생이야기’를 살아가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윈드서핑 인생에서 은퇴라는 말이 맞는지 의문이 간다고 인터뷰에서 대답하고 있다. 내 나름대로 내 윈드서핑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시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꿈나무 선수들이 있다. 일운초등학교-지세포중학교-해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요트학교 과정. 이런 과정에서 선수는 성장하고, 거제를 대표하는 전국 선수로, 세계적 선수로 커 가고 있다. 많은 관심과 지원으로 세계에서 거제시의 이름을 알리고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시민의 관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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