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문 발행인
거제시의회는 14일부터 일반시민이 통행할 수 있는 거가대교의 애칭(愛稱)을 거북선대교(Geobukseon Bridge)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애칭은 본래의 이름 외에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다.

부산시는 2008년 광안대교의 영문애칭을 'Diamond Bridge(다이아몬드 브리지)'로 확정해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1937년에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 Golden Gate Bridge는 금문교라고 부르며, 세계 각지의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거가대교 애칭을 ‘거북선대교’라고 부를만한 역사성과 현재성을 담고 있는지, 거가대교 명칭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 대교 건설 지점은 초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승리의 주무대

1592년 5월 7일 낮 12시경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선 50여 척을 발견하고 이를 동서로 포위해서 포구를 빠져나오려는 적선들에게 맹렬히 포격을 가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의 결과 아군은 별 피해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하는 큰 전과를 올려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장식했다.(옥포해전)

옥포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조선 연합군은 거제도 영등포(永登浦 현 장목면 구영리) 앞바다로 나아가 이곳에서 밤을 지새기로 하고 군사들을 휴식시키려 하였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4시 무렵, 아군 척후선으로부터 일본 수군 대선 4척, 소선 1척이 주변을 지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조선수군이 즉시 추격을 시작하자, 왜선은 필사적으로 도주해 웅천땅 합포 이르렀다.

아군이 합포 앞바다까지 진격하자, 더 도망갈 곳이 없게 된 왜군은 배를 버린 채 육지로 올라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조총을 쏘아 댔다. 그러나 전세는 이미 아군의 완벽한 승리로 굳어진 뒤였다.

1592년 6월 7일 거제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 대선 5척, 소선 2척이 율포(현 장목면 대금리)에서 나와 부산진 쪽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정오 쯤에 영등포 앞에 이르자 조선 수군은 세차게 배를 몰아 율포만으로 추격해 들어갔으며 대선 2척을 나포하였고, 중선 5척을 불사르고, 일본 수군을 36명의 목을 베었다.

▲ 임진왜란 때 율포해전이 벌어진 곳은 거제휴게소가 들어서 있으며, 거가대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1592년 7월 8일 이순신·원균·이억기(李億祺)는 한산섬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섬멸한 다음, 안골포(현 창원시 진해구 안골)에 왜군이 머무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10일 새벽 일본 수군을 공격했다.

왜선들은 모두 42척으로서 조선 수군은 여러 번 왜선을 포구 밖으로 유인하려 하였으나 쉽게 응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은 작전계획을 변경하여 번갈아 포구에 침입하여 왜선을 공격하였다. 이에 왜군이 맞서 싸우자 이억기의 함대도 참가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하루 동안 계속된 싸움에서 왜군 250명이 사살되고 나머지 왜병들은 뭍으로 도망쳤다. 이 해전은 한산도대첩의 승리와 함께 일본 수군의 주력부대를 쳐서 멸했다는 의의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아 싸운 조선 수군의 일부 전투를 생생히 묘사해보았다.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후 거가대교가 건설된 지점을 통과해 장목면 구영리 앞바다에서 쉬려고 했으나 등의 표현은 몇 백년의 세월을 넘어 생생한 현장감으로 다가온다.

현재의 거가대교 건설지점 해역과 직간접 관련을 가지면서 조선수군이 불패신화로 왜군을 무찌른 전투는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 합포해전, 6월 7일 율포해전, 7월 10일 안골포해전, 1593년 2월 10일 웅천해전, 1594년 9월 29일 제1차 장문포해전, 10월 2일 영등포해전, 1594년 10월 4일 제2차 장문포해전 등이다.

이와는 별도로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이 뼈아픈 패전의 역사를 간직한 1597년 6월 19일 가덕도해전, 1597년 7월 16일 칠천량해전도 거가대교 건설지점 해역 중심에서 이루어졌다.

거가대교 건설 지점 해역에는 각종 전투에서 승리한 조선 수군이 승전고(勝戰鼓)를 크게 울린 곳이며, 또한 가덕도해전과 칠천량해전에서 패한 조선 수군의 각종 전함과 수군의 원혼이 묻혀있는 곳이다.

이러한 역사성을 간직한 곳에 3.7㎞의 해저터널과 4.5㎞ 2·3주탑 사장교가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 것은 결코 우연적인 일이 아닐 것이다.

◆ 대교가 위치하는 지점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점

거제시의회가 거가대교 애칭을 거북선대교로 결정하면서 대교가 있는 지점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거가대교와 인접한 지역인 진해에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후예인 해군기지사령부가 있다. 거가대교가 놓인 지점은 해군작전수역이다. 함대, 잠수함 등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바다밑 침매터널이 만들어진 이유와 2주탑 사장교의 높이를 만든 이유도 해군의 작전에 방해를 주지않기 위한 측면도 고려됐다.

거가대교의 중간 지점에는 저도가 있다. 면적은 43만 4181㎡이다. 해안에는 202m의 인공 백사장이 있고, 1973년 완공되어 박정희(朴正熙) 전(前) 대통령의 별장으로 사용되던 청해대(靑海臺) 본관이 있다.

1920년부터 일본군의 통신소와 탄약고로 사용되었고, 1950년에는 주한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되었다. 1954년부터는 해군에서 이승만(李承晩) 전(前) 대통령의 휴양지로 활용했다. 1972년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된 뒤, 1993년 11월 19일 대통령령에 따라 청해대 시설이 해제되면서 같은 해 12월 1일 행정구역도 거제시 장목면으로 환원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방부 소유지로서 해군통제부가 관리하고 있다. 저도에는 인공 백사장 외에 9홀 규모의 골프장,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2층의 청해대 본관, 경호원 숙소, 팔각정과 산책로, 전망대, 자가발전소 등이 있다.

▲ 거가대교 위에서 본 저도

거가대교는 부산신항의 입구에 있다. 부산신항은 컨테이너터미널 30개 선석 규모로 동북아 물류허브항이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제3차항만기본계획에는 부산신항을 거제시 동북쪽 장목면 이수도 인근해역까지 확장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부산신항이 지금의 위치에서 장목면 이수도까지 확장된다면, 거가대교는 부산신항의 입구가 아닌 한가운데 위치하게 된다.

▲ 거가대교 위에서 바라본 부산신항
거가대교가 건설된 지점은 진해만 입구이기도 하지만, 세계적 조선산업 집적지이다. 거가대교 남쪽으로는 대우조선해양, 북쪽으로는 STX조선이 위치해 거가대교 위에서 조망할 수 있다. 이밖에도 진해만 내만에 삼성중공업, 통영안정공단, LNG기지 등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국가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이 세계적 조선산업 집적지가 된 것은 세계 최초 돌격형 철갑 전선인 거북선을 만든 선조들의 ‘장인정신’이 현재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 삼성중공업에서 건조한 선박이 노르웨이 선주사에 인도되기 위해 거가대교 옆을 지나고 있다.
◆ 거가대교 애칭을 거북선대교로 불러도 손색없는 당위성 갖추고 있어

역사성과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거가대교 애칭이 거북선대교로 불리어져도 손색이 없을 충분한 당위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북선대교 결정 후 남은 과제는 홍보이다. 거제시는 홍보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거북선대교가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도록 해야 한다.

거북선대교 명칭이 보편화되면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관광 부가가치 창출이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관리권까지 돌려받게 될 대통령 별장, 저도를 관광상품화시키는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거제휴게소 등에도 역사성과 지정학적 중요성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대형 홍보판을 만들 필요도 있다. 관광객이 이 지역이 이렇게 중요한 지역이며, 그 위에 거북선대교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지난 8일 부산 벡스코에서 부산시·경남도·울산시 공동주최로 열린 'KTX·거가대교 개통에 따른 동남권 광역관광 협력 포럼'에서 최도식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거북선 축제'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 연구위원은 "동남권이 거가대로 개통을 계기로 남해안의 이순신 장군 승전지를 스토리텔링으로 엮고 해상에 배를 띄워 (가칭)거북선 축제를 공동개최하고 △이순신 해전 크루즈, 성인 크루즈 등 연안 크루즈 상품 △부산 신항만, 울산 자동차, 거제 조선소 등을 묶는 산업관광상품 등 공동의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열리게 될 '거북선 축제'의 중심 무대는 '거북선대교'가 있는 지점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2008년 거가대교 새이름 명칭 공모에서 거제시민은 거북선대교를 가장 선호했다. 역사에서 사라진 거북선이 거북선대교(Geobukseon Bridge)로 다시 살아나 우리들 눈앞에 웅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이 거제시민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값진 선물을 '보물'로 만드는 일은 이제 거제시민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이다.  

▲ 거제휴게소에서 거가대교를 바라본 전경
▲ 저도 남쪽 지점에 있는 망루. 역대 대통령들이 저도를 방문해 망루에서 먼 바다를 바라모며 무슨 상념에 묻혔을 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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