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바닷길 거가대교 대역사(大役事) 꿈이 13일 현실이 됐다. 새로운 도전이 23만 거제시민에게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이 바닷길은 거제의 역사·현재·미래를 간직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소중한 바닷길이다. 임진왜란 때 옥포·율포·안골포·웅천·영등포해전 등에서 조선 수군이 승전고(勝戰鼓)를 울린 '바로 그 바다'이다.

또한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이 가덕도해전에서 패하기 시작해 칠천량해전에서 크게 패할 때, 조선 수군의 거북선·판옥선·포작선과 함께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수군의 원혼'이 잠들고 있는 '바로 그 바다'이다.

한국 전쟁 전후 좌우익 갈등으로 거제·마산 등지에서 1000여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쇠줄에 묶인 채 줄줄이 수장(水葬)을 당한 통곡의 '바로 그 바다'이다.

한국 전쟁 때 포로들을 싣고 거제 포로수용소까지 군함들이 드나들었던 '바로 그 바다'이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 등에서 건조된 초대형 선박들이 뱃고동을 힘차게 울리며 첫 '생명'의 항해를 시작하는 '바로 그 바다'이다.

동북아 물류 허브항인 부산신항의 대문인 '바로 그 바다'이다.

이순신 장군의 후예인 진해 해군 통제부의 각종 군함 등이 수시로 드나들며, '학익진(鶴翼陣)' 군사 작전을 벌이는 '바로 그 바다'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여름 휴가철이면 저도 청해대 별장을 찾아 누각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국가와 국민을 걱정했던 '바로 그 바다'이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처자식 먹여살리기 위해 겨울 새벽 세찬 바람에 눈물 흘리고, 꽁꽁 언 손을 바닷물에 녹이며 지난한 삶을 살아온 '바로 그 바다'이다.

애비 어미보다 더 배우고, 배우지 못한 서러움 당하지 않도록 자식들을 육지로 유학 보내던 '바로 그 바다'이다.

우리들의 형님 누나 동생들이 6·70년대 부산·마산 등지의 철공소·섬유공장·신발공장 직공으로, 원양어선 선원으로 취직하기 위해 '눈물 보따리' 하나 들고 금성호, 영진호, 신진호, 세길호 등에 몸을 실어야했던 '바로 그 바다'이다.

자기가 태어난 곳 절대 잊지 않고, 이역 만리 바닷길을 한 치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되돌아와 어민에게 대구 풍어(豊漁)를 안겨주는 '바로 그 바다'이다.

이렇듯 거가대교는 '꿈의 바닷길'이 아닌 민족사와 거제역사를 깊게 간직한 '역사의 바닷길'이다. 또 거제시민의 애환이 서려있는 '고난의 바닷길'이다. 거제는 '환상의 섬'이 아닌 민족사의 수난마다 나라를 구한 '구국(救國)의 섬'이다.

육지로 향하는 바닷길은 거제에게 새로운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경쟁상대는 만만치 않다. 370만의 부산광역시, 100만의 통합창원시, 50만의 김해시 등 거제보다 덩치가 큰 기초 광역 지자체다.

부산은 부산발전연구원 등 도시미래를 설계할 '싱크탱크'인 두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에 반해 거제는 손과 발은 있지만, 거제미래를 설계하고 지략과 전략을 짤 두뇌가 없는 실정이다.

숨이 턱 막힌다. 역사의 풍랑을 헤쳐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8.2㎞ 바닷길은 거제시민이 선택한 길이다. 누구의 길도 아닌 거제시민의 길이다.

민초(民草)·시민(市民)은 강인한 거제 도민(島民) 정신으로 숱한 역사를 헤쳐나왔다. 외지에서 온 시민들은 어느새 바다를 개척해 삶을 일구어온 '새벽정신'을 몸에 익히고 거제사람이 된다.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에서 왜군과 맞서면서 “경거망동 하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는 호령(號令)은, 역사적인 거가대교 개통에 거제시민에게 들려주는 큰 깨우침이다. 깊이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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