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년 맞은 신영복 교수
아래 글은 한겨레신문이 2008년 8월 28일 25면에 보도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에 관한 글이다. 1968년부터 20년 20일의 감옥생활과 1988년 8월 15일 출소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취재 보도한 내용이다.
40년 이어온 사색…"진보 구심체 꾸릴 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50만부 이상 팔린 ‘장기 베스트셀러’
‘청구회의 추억’ 따로 출간 기념행사
“절제가 오히려 더 깊은 공감 부른 듯”
“가끔 독자들을 만나 들은 얘긴데, 힘든 상황을 겪은 분들이 내 글에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일부에선 신영복의 이력에 비해 사색의 전투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했고 또 한켠에선 엄청난 전투성이 있다고도 했다. 여러 층위의 반응들이다. 대체로 인문학적 가치, 인간적 고뇌, 인간적인 삶과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그런 호응을 불렀다는 평이 많다.” 27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 책의 20년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의 사유의 폭과 깊이를 한 차원 높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심도 있는 담론들의 등장은 이른바 ‘87년 체제’를 실감하게 만드는 하나의 징표였다.
봉함엽서를 채운 그의 글들은 검열을 받았고 상당수는 그 과정에서 불허당했다. 그 때문에 “검열보다 더 강도 높은 자기검열”을 통과해야 했는데, 일부에서 지적한 ‘전투성 부족’은 그런 사정을 반영한다. 서신 발송 횟수는 징역 초기 4급일 때는 한 달에 한 번, 2급일 때는 네 번 등으로 제한돼 있었다.
돌베개 출판사가 이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돌을 기념해, <청구회의 추억>(1998년 증보판부터 수록)을 영역대조 단행본으로 따로 내면서 북콘서트를 여는 등 ‘20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청구회의 추억’은 지은이가 1969년 사형선고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재생종이 휴지에 몰래 6명의 아이들과의 우정에 관해 쓴, 문학적 향기가 짙은 글이다.
재판 때 검사는 초등학교 꼬마 6명을 위해 지어준 노래가사 속의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의 ‘주먹 쥐고’조차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의 준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20년간 아들의 출소를 기다리던 양친은 살아서 그 꿈을 이뤘으나 병중이던 어머니는 그의 출소 뒤 1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7년을 더 살았다. 그들 소원대로 결혼도 지인들 주선으로 출소 뒤 바로 했다.
출소 뒤 다시 20년, ‘87년 체제’가 무너지고 ‘보수반동’의 시대가 재래했다. “20년 전 6·29 선언 이후의 민주화가 불완전하고 불철저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사회변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운동의 구심, 지도부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뒤 진보적 정당들까지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키워 온 민주, 변혁 역량을 아우를 수 있는 탄탄한 구심체를 꾸리는 일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는 보수적인 ‘2008년 체제’가 오히려 그런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따라서 현 정권의 장래가 순탄하진 못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하지만 한층 정교해지고 대중화한 현대 사회의 포섭기제, 특히 미디어나 이미지를 집권세력이 장악함으로써 젊은층의 정치적 각성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며, 변혁 가능성을 낙관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2008. 8. 28. 25면 인용보도. 한승동 선임기자, 사진 이종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