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친일파란 명목으로 한국전쟁 큰 업적 매장시킬 수 없다"

▲ 이승철 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기고]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건립된 김백일 장군의 동상을 놓고 설왕설래 말이 많다. 어떤 이는 친일파이기 때문에 철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어떤 이는 6·25한국 전쟁 때 가장 많은 인명을 구제한 공로와 전공(戰功)은 이루다 말 할 수 없다고 하며 잘한 일이라 한다.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김백일 장군이 친일파였기 때문이라 하는데, 친일파에 대한 거론은 정치인들로부터 과거사 정리란 제목아래 친일에 대한 논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제강점기에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몇이나 될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나 상인들도 친일을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친일파 중에서도 일본의 앞잡이 악질적인 행동을 한 사람은 일본 때 순사나 지방 관리다. 심지어는 구장, 반장, 면장까지도 친일을 했다. 살기 위해서 친일을 한 것과 자의적으로 친일을 한 것은 다르다.

그것을 지금 와서 누구누구라고 단정 짓는 것은 엄청난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엄격히 말하면 일본 교육을 시킨 교육자는 어떤 친일파 보다 더 강도가 높은 친일파다. 우리민족의 정신과 언어, 글, 풍속까지도 일본화 시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 가운데, 문화인으로 추앙하여 기념관까지 세우는가 하면, 광복 후에 한국교육에도 크게 이바지 한 교육자도 많다. 김백일 장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항일운동에 앞장 선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전해져 온다. 대동아 전쟁 전후로 우리민족을 일본 군인과 보국대, 정신대로 끌고 갔다.

그때 김백일 장군이 일본 군관으로 있었다고 해서 친일파로 몰아 한사코 매장시키겠다고 하는 저의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한 점도 논의가 없다는 것은 역사를 잘못된 곳으로 몰아 부치려고 하는 자들의 감정적인 심사다.

김백일 장군의 업적에 대해서는 75세 이상 6·25한국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잘 알고 있다. 광복 후에 국방경비대에 지원 입대해 1946년 부위(副尉)로 임관되어 경비사관학교장, 제5연대장, 특별부대사령관 때 국군발족과 더불어 육군대령으로 승진, 1948년 여순반란사건 진압, 준장으로 진급, 육군보병학교장, 육군 제3사단장, 육군본부 참모부장으로 있을 때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소장으로 승진, 육군 제1사단장으로 있을 때 동해안에서 제일 먼저 38선 돌파, 원산과 청진, 해산까지 북진하였다.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해야 할 흥남 철수작전 때 미 10군단장을 설득, 피난민 15만을 부산과 거제도에 무사히 피난 할 수 있게 하였고,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각 전투마다 승리를 이끌게 하였다. 전쟁 중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전사유공자다.

우리민족의 생명과 자유, 민주주의를 사수한 공로자다. 김백일 장군만한 업적을 가진 애국지사가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김백일 장군이 없었더라면 공산주의 통일을 하였을 것인데, 김백일 장군 때문에 남침 적화통일이 무산되었다.

그들은 아직도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을 숭배하는 좌파세력들이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친일파란 명목으로 그 큰 업적을 매장시킬 수는 없다. 그런 뜻으로 김백일 장군의 통일정신을 무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김백일 장군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었을 것인데, 김백일 장군 때문에 이루지 못한 한풀이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김백일 장군말만 나오면 죽자 사자 물고 늘어지는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김백일 장군의 업적을 모르고 잘못된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같이 동참하여 불을 붙인다면, 누가 좋아할 것인 지 뻔한 일이다.

민주국가, 이 나라를 사수하고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목숨 걸고 사수한 김백일 장군 이하, 그때 참전하였던 참전용사가 있었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고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참전 용사의 대우를 소급해서라도 잘 대우해줘야 한다. 다른 공로자와 비교해서 그들은 너무 홀대를 받고 있다.

정치인들이 표에만 의식 하지 말고, 이런 분들의 업적을 알아줘야 한다. 그리고 과거사를 정리하는데,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와 나라를 지킨 이들을 왜 애국지사로 기록하지 않느냐, 이 시기가 지나가면 찾기 어려운 역사다.

포로수용소 유적지 보존과 유적공원 조성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 정치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필자가 유적지 보존과 사업을 하는데 자료수집과 계획을 세웠다. 반대하던 사람 가운데 사업이 끝나고 나니 자기가 그 사업에 앞장섰다고 공공연히 자랑을 하고 다니던 사람도 있었다.

유적공원 내에 흥남철수 공원을 만들 당시에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논의가 있었다. 그 당시 郡예산상 어려워서 미루어둔 것이다.

흥남철수작전과, 포로수용소, 피난민촌은 거제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곳에는 그 당시 큰 업적을 세운 김백일 장군의 동상과 당시의 전쟁 역사가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유적공원에 故 신봉근 선생의 공적비를 꼭 세워야 한다.

신봉근 선생은 포로수용소 돗드 준장 납치사건 후에 고현, 용산, 수월, 양정,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 1천6백 세대가 쫓겨 나갈 때 대책위원장과 난민(難民) 대책복귀 위원장으로 엄청난 일을 했다. 그런 분의 비석을 안세우면 누구의 공적비를 세우나? 그 분에 대한 업적은 다음에 기술토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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