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에 세워진 김백일 동상이 '자진철거 아니면 행정대집행 철거'로 가닥이 잡혔다.

경상남도는 "문화재 자료인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시설물을 설치할 때는 문화재영향검토를 거쳐야 함에도, 김백일 동상은 이러한 절차를 이행치 않아 불법적으로 건립된 시설물이기 때문에 동상을 철거해라"고 4일 거제시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시 문화공보과는 이날 오후 김백일 동상 건립 주체인 흥남철수기념사업회와 거제시 관광과에 '동상 철거를 이행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흥남철수기념사업회와 관광과가 동상 자진 철거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경우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동상을 강제적으로 철거하게 된다.

이렇듯 저렇듯 김백일 동상은 이제 철거운명에 놓였다. 5월 27일 세워진 동상은 40여일 만에 철거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결론이 났다. 단지 누가 언제까지 철거하느냐는 절차만 남아 있다.

'친일파 주장'과 '한국전쟁 공적'이 양립하는 인물의 동상을 여론검증 절차도 없이 세울 때부터 문제를 잉태(孕胎)하고 있었다.

시민단체 동상 철거 성명서 발표, 옥영문 시의원 1인 시위, 한기수 시의원 5분 자유발언, 시민단체 계란 투척 퍼포먼스, 7명의 거제시의원 1인 릴레이 시위, 거제시의회 결의문 채택, 7명의 거제시의원 가두서명 등으로 김백일 동상 철거를 촉구했다.

40여일 동안의 행정력 낭비, 시민의 갈등과 분열 조장 등을 되새겨보면 이번 일은 간단히 스쳐 지나칠 문제는 아니다.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앞에는 '흥남철수작전시 난민을 도와주신 거제시민에 대한 은덕비'가 세워져 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공포와 죽음을 피해 남으로 간다는 흥남부두의 생명선에 탄 안도감도 잠시 칼바람 몰아치는 겨울 바다의 혹한 속에서 부모형제와 고향을 떠난 두려움만큼 무서운 것은 그 남쪽 땅에 저희들 갈곳이 없다는 절망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제도민 여러분들은 저희들을 받아주었습니다. 저희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따뜻한 사랑으로 녹여주시고 저희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었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와 의지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신 거제도민의 장엄한 공덕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이 은덕비를 세워 헌정합니다. -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발기인 일동'

피난민이 남으로 내려왔지만 어디에서도 피난민을 받아주지 않아 절망적이었을 때 거제도민이 피난민을 안아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의 글이다.

▲ 은덕비 앞면과 뒷면
큰 포용 정신을 가진 거제시민이 '김백일 동상'도 관용과 아량으로 충분히 받아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거제시민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거제는 임진왜란 때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지키기 위해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한 수많은 조선 수군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또한 일제시대 때 항일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1위의 조선 산업 도시로 대한민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현재의 거제시민은 단지 거제도를 잠시 동안 맡아 살고 있을 뿐이지 진정 거제의 주인이 아니다. 거제시장, 거제시 공무원은 더더구나 거제주인이 아니다. 거제의 주인은 빛나는 거제역사를 만든 선조들, 그리고 생활터전 곳곳에서 땀 흘리는 현 세대, 그리고 거제의 역사를 이어갈 후세들이다.

거제도의 과거역사를 반추(反芻)하고, 현 세대가 역사 의무를 다하며, 미래세대의 거제 자긍심을 규정짓는 '역사적 행위'는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백일 동상에 대해서는 '두려우면서도 용기있는 행동'으로 양심세력들이 철거를 종용했다. 현 세대는 단지 그들에게 주어진 조그만 사명을 행했을 뿐이다.

피난민을 안아준 거제도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아직도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거제시민의 마음을 한번쯤 헤아려 김백일 동상을 자진철거하는 결단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백일 동상 철거'를 촉구한 거제시민은 6․25전쟁을 부인하는 '종북주의자도 빨갱이도 반미주의자'도 아니다. 거제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며 미래세대를 염려하는 '순진하고 착한' 거제시민일 뿐이다.

▲ 김백일 동상 철거에 서명하는 시민은 '순진하고 착한' 거제시민일 뿐이다.
그리고 동상 철거 후에도 문제는 하나 남아있다. 그것은 이번 일로 시민의 갈등과 분열, 대립을 조장한 거제시 관련 공무원의 책임을 묻는 일이다.
 
▲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앞에 세워진 김백일 동상과 동상철거 1인 시위를 벌이는 옥영문 거제시의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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