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김백일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결론"
"이명박 정부, 김백일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결론"
  • 김철문 기자
  • 승인 2011.08.30 15:4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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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인터뷰…"동상 철거 전국적 대응할 터"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 인터뷰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세워진 김백일 동상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26일 거제시의 동상 철거 행정대집행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김백일 동상 설치 과정의 적법성 여부 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 동상철거 행정행위는 중단됐다.

25일 극우 논객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청소년 수련관에서 김백일 동상 철거 반대 강연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29일에는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 주최로 '친일반민족 행위자' 김백일 동상 철거를 위한 거제시민토론회가 있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과 안정애 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옥영문 시의원, 박동철 거제경실련 대표가 토론자로 나섰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거제를 방문했다. 박 실장은 30일 오전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김백일 동상을 직접 둘러봤다. 그리고 인터뷰를 했다. 40분 분량의 인터뷰 전문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29일 밤 열린 시민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박한용 연구실장은 인터뷰에서 "간도특설대는 악질적인 친일조직이다"며 "김백일은 간도특설대 창설에서부터 부대해산때까지 근무한 사람으로 간도특설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박 실장은 또 "김백일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1월 한나라당, 민주당, 대법원장, 대통령이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론났다"며 "후손들은 위원회 결정 후 이의제기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3·1운동, 항일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며 "친일 청산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세력은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했다. 아래는 박한용 실장과의 일문일답 전문.

○ 김백일과 봉천군관학교, 간도특설대와 관계를 언급한다면

= 김백일 씨는 이른바 만주국의 육군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는 봉천군관학교 5기로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을 했다. 소위 임관 후 바로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으로 차출이 됐다.

간도특설대는 악질적인 친일조직이다. 1938년에 창설된 간도특설대는 핵심 요원이 송석하, 김백일 등이다. 간도특설대가 만들어진 것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이다. 중일전쟁을 하면서 일본은 중국 본토에서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만주 내에 있는 항일게릴라들을 일망타진하거나 섬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을 한다.

그렇게해서 간도 지금의 연변주 일대인 간도지역 80%가 조선인이었다. 항일게릴라들이 물고기와 같은 존재다. 그리고 조선인은 물과 같은 존재였다. 일본군이나 만주군이 전쟁을 치를 때 조선인이 협조를 잘 하지 않는다. 게릴라편을 든다. 근본적으로 소탕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으로 만든 특수부대가 필요했다. 간도성 성장(省長) 이범익이 제안하고, 연길헌병대 등 일본 특무기관이 입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간도특설대는 만들어질 때부터 조선인 항일 유격대를 전문적으로 토벌하는 만주국 최강의 부대였다. 악명이 높았다.

김백일이는 창설 대부터 45년 8월 부대가 해산할 때까지 시종일관 핵심간부로써 활동한 사람이다. 그는 간도특설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김백일 동상을 지켜보고 있는 박한용 실장
○ 만주국 소위는 지금의 군대에서 말하는 소위(少尉)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소위 김백일은 소대장으로 시작해가지고 중대장이 됐다. 간도특설대가 해산할 당시에는 선임중대장, 수석중대장, 상위 즉 대위였다. 그 당시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는 정일권이 소령으로 진급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서열 2위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해서 소위 임관자 조선인 장교가 많지 않았겠느냐고 말씀을 한다. 실제로 만주국이 1930년 만들어진 이후에 만주국이 패망할 때까지 조선인으로써 소위 임관자는 연 평균 4.7명 밖에 되지 않는다. 1년에 다섯 명이 될까말까하는 것으로 그만큼 희귀한 존재다. 친일파 인간문화재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희귀한 존재였다. 그만큼 이들은 또 직업군인으로써 당시 만주에서 항일 유격적이 활발했을 때 만주국 장교로써 항일 세력을 섬멸하면서 군공을 세운 확신범이다. 친일파이다.

○ 일부에서는 간도특설대는 김일성 좌익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한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독립군이라든지 항일세력을 탄압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간도특설대가 중점적으로 탄압한 동북항일연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 역사적으로 좌우갈등은 해방 이후다. 특히 6ㆍ25때다. 조선시대 좌우 갈등을 얘기할 수 없었듯이 시대조건에 따라서 봐야 한다. 1930년대는 특히 중반, 여기에는 만주에는 동북항일연군이라는 통합 유격대 조직이 만들어진다. 이 지역 일대는 중국 공산당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항일연군에는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일률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다.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당시 역사적 실체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 1940년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옮겼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간도의 항일연군은 공산주의 세력이라든지, 김일성 세력이기 때문에 간도특설대의 탄압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

= 일제 식민지 투쟁사는 반공투쟁사가 아니고, 항일투쟁사가 기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느냐 저항했느냐가 역사적 가치평가의 기본 축이 된다. 이 시기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족혁명당 김원봉 의열단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통합이 된다. 이 이유는 좌우가 함께 싸우지 않으면 독립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이 시기는 미국 영국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 중국이 연합국이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이나 이 시기의 기본적 관계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파시즘 국가와 파스즘이 아닌 국가 간의 연합 전선이었다. 그렇기 중국에서는 국공합작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되겠다.

두 번째는 동북항일연군은 만주에 있는 민족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 나아가서는 중국인 조선인 몽골인 만주인 민족 투쟁이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투쟁을 느닷없이 반공 투쟁을 얘기하는데, 반공 투쟁은 아무런 관계가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6․25 이후에 남북 분단하고, 전쟁이 일어날 때 반공이 거론됐기 때문에 이 시기는 적용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김일성 부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동북항일연군에는 중국인, 연변 지역의 다양한 조선인들이 있었다. 해방 이후에 좌우갈등, 6ㆍ25 전쟁의 이념적 잣대를 1930년대 일제 시대에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다.

▲ 김백일의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와 간도특설대 이력이 누락돼 있는 이력을 살펴보는 박한용 실장
○ 동상을 직접 살펴보았듯이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세워진 김백일 동상 아래쪽 기단부 동쪽 면에는 김백일 이력이 있다. 1917년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후손으로 태어났다에서 그 다음 이력은 1946년으로 넘어간다. 만주국 소위로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사실이 송두리째 빠져있는데

= 이렇게 본다. 이력을 누락시켰다는 것은 일종의 세탁이라고 본다. 역사에 개인 이력 세탁이다. 김백일 할아버지가 독립 운동을 한 사실을 넣었다. 이 동상에는 일제시대 이력은 하나도 안 나온다. 만주국 장교였다는 얘기도 안 나오고, 간도특설대 장교였다는 사실도 안 나온다. 그런데 느닷없이 6ㆍ25 전쟁영웅으로 나온다. 일반인들이 볼 때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민족의식을 가지고 6ㆍ25때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일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미필적 고의라고 한다. 의도한 고의다. 이렇게 되면 김백일이가 일제시대 왜 봉천군관학교를 자발적으로 가서 만주국 장교가 됐고,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사람인가. 그 이후에 한국전쟁 때 군단장을 했는가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숨겨놓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동상은 흥남철수작전을 기리기 위한 동상도 아니고, 김백일 한 인물을 영웅으로 억지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6․25 전쟁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이력을 세탁한 행위다.

○ 김백일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인명사전에 동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됐는데, 등재될 당시 유족들은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는가?

= 처음에 저희들이 인명사전에 대상자 명단발표를 하고 나서 김백일 아들인 되신 분이 항의를 했다. 김백일에 대한 친일인명사전에 실리지 않은 다른 자료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의신청을 했다. 이의신청을 받고 기각을 통보를 했다.

○ 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었나

=소송 제기는 안했다. 다시 말하면 기각이 됐고, 통보를 했다. 그러면 부당하다면 소송을 해야지요. 사실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명백한 자료가 있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 국가기구이며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두 번에 걸쳐 이의신청을 받았다.

첫 번째는 조사결정이 되었을 때 이의신청을 하라고 했다. 이의신청을 했다. 위원회에서도 동일하게 기각이 됐다. 마지막으로 반민족행위자 선정 결과를 통보했을 때 이의신청을 하도록 돼있다. 이때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상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갑자기 김백일 영웅 만들기가 나온다. 그 다음에 거제로 옮겨가면서, 지역마다 거부당하면서 왔다.

○ 속초에서 지난해 김백일 동상을 세우자고 했을 때 민족문제연구소에 김백일의 공적을 조회했는가?

=요청했다. 저희들이 답변을 보냈다. 기본내용이 간도특설대라고 하면 만주의 최고 악질 친일파였다. 항일운동을 탄압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일선 지휘관이었다.

○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국가기관이 아닌 사적 단체이다.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이력 등을 거론하면서 종북세력이다, 친북좌파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측도 있는데.

=친일청산 반대 세력은 친일청산 주장하는 세력은 빨갱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묻겠다. 드골이 나치 협력자를 처단할 때 드골이 빨갱이었나? 다른 나라는 민족반역자를 처벌할 때 모두가 칭찬하고 존중했다.

민족을 위하는 사람은 빨갱이가 되고, 민족을 배반한 사람은 애국자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옛날부터 내려왔던 분단의 아픔과 이데올로기 갈등들을 빨갱이로 몰면서, 색깔론으로 나오면서 반민족 행위자인 매국노에 대해서 옹호하는 아주 반민족 행위자들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해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3ㆍ1운동과 항일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친일청산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일개 민간단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인터넷으로 친일문제 전문연구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예외없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유일한 기관이다고 나온다. 그것도 20년 이상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문연구기관이다.

○ 그렇다면 국가에서 민족문제연구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올해 이명박 정부는 장지연 등 19명의 서훈을 취소하는 결정을 했는데.

=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행적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있을 때 공식적으로 국가기관인 재판부에서 공문을 보내서 자료를 보내고 있다. 문광부에서 이달의 인물을 선정할 때 매년, 행적과 공적조회를 민족문제연구소에 공식적으로 했다.

그 다음 올해 보훈처에서 장지연을 포함해 19명의 독립유공자들을 서훈 취소를 했다. 보훈처는 국가기관이고 독립유공자를 심의하는 최고 기관이다. 여기서 19명의 서훈 취소의 근거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근거해서 서훈을 취소한다고 나왔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할 때 편찬위원이 279명인데, 이들은 전문학자들이다. 빨갱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러면 한국의 역사 전문 학자, 근현대사 역사학계 전체를 빨갱이로 매도한다는 것은 정신병자다. 정상적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지 못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 박한용 실장
▲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김백일(본명 김찬규) 관련 내용 중 결론, 판단 부분
○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9년 11월 27일 3기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을 발표했다. 김백일도 3기 명단에 포함돼 있다. 재작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의 구성과 성격은 어떠했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위원들이 조사한 것을 심의하는 위원들이 있다. 이 위원들이 결정을 해야만 채택이 되는 것이다. 위원들의 구성은 법에 의해서 야당과 여당 성향 위원들이 들어간다. 한나라당, 민주당, 대법원장, 대통령이 추천한 사람이 위원이 됐다. 따라서 특정 정당의 정파가 아니고, 여야가 함께 있는 것이고, 그 안에는 한나라당이 추천한 분 중에는 친일 청산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백일과 같은 3기 친일파는 이명박 정부 때 결정됐다. 판정이 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가 아니고 이명박 정부 때다. 이 시기에 과거사 관련 위원들이 홍역을 앓았을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도특설대 장교로써 올라간 사람은 전원 만장일치로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통과됐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추천한 사람도 용공 빨갱이라는 말인데. 이명박 정부는 빨갱이 정권이냐고 묻고 싶다. 재판부에서 친일파후손들이 위헌신청이나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낼 때 재판부가 전부 다 기각을 시켰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사법부도 우리를 빨갱이로 봤겠느냐.

이들은 무엇이냐. 자기 조상 한명을 위해서 대한민국 정부도 빨갱이로 몰고 사법부도 빨갱이로 몰고, 민간단체도 빨갱이로 모는 아주 정신착란증에다, 편집광을 가진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은 친일파를 빠져나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다. 민족 앞에서 반성을 하면 용서를 받을텐데,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앞에 죄를 짓고 나선다. 역사의 상식과 정의를 세우는 사람을 두고 빨갱이로 모는 자체야말로 반드시 친일파 청산이 안되면 안되겠더라는 교훈을 준다. 이 시대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 김백일은 일부에서는 6ㆍ25 전쟁영웅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전쟁사1:해방과 건군’에 국방경비대 3연대장 김백일 배척사건이 기록돼 있다. 또한 여수순천반란사건이 발생했을 때 진압군 5여단장이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는 이때 무리한 토벌작전을 펼치면서 민간인 집단학살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 간도특설대는 특설부대였다. 게릴자전을 중심으로 했다. 항일게릴라들이 침투한 지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조사하고, 증거를 확보해 고문을 한다. 고문을 하고 용의자를 죽이고 하는 부대다. 일제 시대 죄행이 매우 크다. 훗날 김백일이나 간도특설대 장교들이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이나 게릴라전이 반복이 된다.

참고로 간도 특설대 당시에 무고한 민간인들을 가서 고문하고, 살해하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서 애기가 흘려나오고, 심지어 사람을 죽여서 생 간을 뽑아가지고 짐통에 들고, 지고 가게 해서 자기들의 동료가 죽은 기념비, 추모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생 간을 꺼낸다는 것은 악질 부대였다.

살인 강간, 방화 치를 떠는 일이다. 그 기록들이 다 남아있다. 만일 이들이 도망가지 않고 체포되었다면 전범이고 반인륜적 행위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처형당해야 할 사람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아 있다. 만약에 그들이 그때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면 6ㆍ25때 대민 피해가 없는 전쟁을 해야겠죠. 하나 상당히 많은 민간인 학살이 있었지 않느냐.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것은 그러한 과거, 일제시대 못된 이른바 청야 작전, 태우고 죽이고 하는 삼광작전, 이들을 통해 625 때 다시 재현이 됐다.

그런 점에서 6ㆍ25를 남북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의 대립으로 봐야 하는데, 왜 민간인이 유독 많이 죽었는가. 어린 아이가 죽고, 할머니가 죽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특히 김백일 씨 같은 경우는 개인 결혼식에 군인들의 보급품인 레이션을 빼돌려 부정 처분한 돈으로 결혼했다. 그 군수품을 대량을 처분해서 호화판 결혼식을 했다. 이것이 문제가 돼서 연대장에서 부연대장으로 강등이 된 사람이다.

50년대 60년대 군납 비리가 있고, 지휘관의 부정부패가 문제가 됐는데,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 당시 부패가 심했는데, 김백일이는 특별하게 기록될 만큼 한국군 지휘관의 귀감이 아니라고 했고, 흥남철수작전 때도 그가 실제적 주역도 아니었다.

6ㆍ25 전쟁 전에 이른바 대게릴라토벌이라고 하는 청야작전 할 때 민간인 학살을 한 부분은 종합 검토가 돼야 한다. 느닷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동상을 세운다는 자체가, 과정 자체가 석연치가 않다.

○ 동상은 세워졌고, 철수냐 존치냐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 거제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김백일 동상과 거제시민은 어떠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 거제는 임진왜란 옥포승첩지 지역이다.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김백일 동상이 갖는 의미는 지금의 문제는 현재 미래를 관통하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사실은 모든 지방들은 애향심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내려왔다는 내고장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정체성을 교육시키는 것이 미래세대에게 애향심을 영원히 가지는 길이 되겠죠. 거제도라고 하는 것은 한국 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지가 바로 옥포다. 조일전쟁이 아니겠느냐. 율포해전, 장문포해전 등 여러 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그런 곳이라고 봤을 때 일종의 어떤 의미에서는 항일, 민족주의의 성지라고 말할 수 있다. 거제는 항일 민족주의 성지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경제 발전도 있지만, 경제 발전 당시에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권리투쟁, 한국노동운동사의 중심지다.

거제포로수용소 같은 경우는 6ㆍ25 전쟁 비극의 현장이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좌우로 나눠지고, 죽고 죽이는 후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가르쳐야 한다. 한 집안에서 형과 동생이 총을 겨누었다. 이 역사는 고통이었다.

전쟁을 통해서 민족의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그러한 역사의 현장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여기에 최악질 반민족행위자를 세워다 놓고, 느닷없이 전쟁 호국 영웅으로 만들어놓는다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볼 때 헷갈릴 것이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을 보다가, 내일은 일본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장교의 동상이 있을 때, 과연 거제도의 정체성은 무엇일까라는 것이 대단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동상이 있는 한은 후대에 죄들 짓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세대를 위해서도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거제에 맞는 역사적 민족의식에 맞는 조형물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 동상을 직접 보았다. 동상을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대응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 일단 여기 와봤을 때 김백일은 간도특설대의 최고 악질 장교이다. 간도특설대의 최고 악질 장교를 어느날 갑자기 호국영웅으로 둔갑시켜 대한민국이 추앙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친일파를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완용 동상도 세울 수 있다고 본다. 독립군을 토벌한 사람 동상을 세웠는데, 왜 이완용은 안되겠나. 이완용은 서예를 잘했는데, 그러면 서예가협회서 동상을 세워도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되면 모든 친일파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동상에 대한 용납이 된다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친일파들은 전례가 된다. 저는 국립묘지에 있는 독립운동가 애국 선열 묘역을 없애야 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친일파를 기념하는데 애국 선열들이 국립묘지에 있을 수 있나.

과거의 친일 사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친일 후예들이 모든 것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아마 다음주부터 알려지지 않은 간도특설대의 진실과 김백일 백선엽 같은 최근 미화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보도가 될 것 같다. 행적들을 공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간략한 기술이 아니라 그들이 만주국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공개함으로써 다시 한번 친일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공식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 거제 출신으로써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동랑 유치진이 있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친일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청마 유치환이 있다.

= 청마 유치환은 친일 인명 사전에 등재가 되지 않았던 것은 친일행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유치환의 ‘수’라는 제목의 시는 친일 행위가 매우 짙다고 보고 있다. 청마가 쓴 짤막한 논설이기는 하지만, 만선일보에 실린 글은 명확하게 친일 논설이다. 다만 우리는 친일 논설을 쓴 후 친일행위를 계속했는지를 찾아야되겠다 추가 조사 대상자로 돼 있는 상황이다. 경찰로 치면 용의자가 되겠다. 다시 말하면 용의자가 신분이라는 사실로 이해해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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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2011-08-30 23:00:20
북한주민의 등골을 2대째 빨아먹고 있는 공산세습독재 정권의 태두 김일성이놈이 권력장악을 위해 써먹었었던 전략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사이비 또는 종북 진보들이 과거 10년간 재탕, 삼탕하였던 것들과 그 맥이 일치하는 것 또한 우연의 일치인가?

거제도 2011-08-31 08:48:55
김삿갓님 요새 물장사는 안하시나요 이곳저곳 다니면서 댓글다는게 취미이신 모양입니다.
김백일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빼앗겼을당시 적국에 있었던 적군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는것은
상해 임시정부를 거부하는것이고 그것은 적국을 이롭게하는 사람 즉 간첩이라고 쉽게 말할수있고 간첩은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빨갱이아닙니까????? 김백일은 빨갱이이고 이넘을 동조하는 김삿갓 또한 빨갱이다고 주장합니다.

김삿갓 2011-08-31 09:34:07
여순반란사건(1948.10.19) 당시 후방을 교란시켰던 빨갱이들을 진압 토벌하였고, 육이오전쟁 당시 낙동강전선동쪽(포항, 안강, 영덕 등)에서 북괴군을 저지하여 북진의 발판을 만들었다. 북진시에는 김백일 장군이 지휘한 1군단 3사단이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했다. 이로 인해 10월1일 국군의 날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서 소장으로 전투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여 중장으로 추서됐다.

자유토론 2011-08-31 14:30:26
재향군인회/조갑제측과 시민단체/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실장측의 끝장토론을 벌여
봄이 좋겠음
내용이 많아 일반시민이 통 알수가 없음. 친일파냐 애국자냐 판단하기 너무어려워..
거제신문에서 기획하면 좋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