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애 박사, 토론회서 주장…"미화 또는 허구적 소설을 쓴 것 아닌가?"

▲ 결혼식 비용 마련 위해 군수품 부정처분사건 당사자, 연대장에서 부연대장으로 좌천…군 기록에 "김백일을 부정적으로 기술"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거제시에 올해 3월 4일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김백일 동상 건립을 요청하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서를 팩스로 보냈다.

‘고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 허가 협조 건’의 문서에 “10만 여 명의 함경도민들의 생명을 구원해준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 당시 동포들의 애절한 사연을 에드워드 이 알몬드(Edward E. Almond) 10군 단장에게 강력히 건의하여 군이 철수하는 군함에 함경도민들을 함께 태워 피난할 수 있도록 한 고 김백일 장군의 은혜를 함경도민들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거제시는 이에 3월 22일 ‘고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 승인 사항 통보’라는 공문에서 “10만 여명의 함경도민들의 생명을 구원해준 고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은 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흥남철수기념공원 이미지에 부합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아 (동상 건립) 승인을 통보한다”고 했다.

하지만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발언이 나와 주목된다. 또한 이같은 내용이 사실일 경우 한국전쟁사 등 역사적 사실(史實)에 대한 아무런 검증도 없이 흥남철수기념사업회의 주장에 ‘부화뇌동’한 꼴이 돼버린 거제시 행정의 난맥상 또한 짚고 넘어갈 문제라는 지적이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의 주장을 뒤엎는 발언은 29일 저녁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가 주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백일 동상 철거를 위한 거제시민토론회’에서 안정애 박사(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팀장)를 통해서 거론됐다.

▲ 지난달 29일 신현농협 하나로마트 2층 회의실에서 열린 김백일 동상 철거를 위한 시민토론회
안정애 박사는 이날 ‘김백일(본명 김찬규<金燦奎>/일본명 김택준남<金澤俊男>의 친일행적과 한국군에서의 행적’의 주제발표를 하면서 “알몬드에게 (피난민들의 수송을) 얘기했다는 것은 한국전쟁사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밝혔다.

안 박사는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의 작전지위권 맥아더에게 이양한다는 친서를 보낸 후, 한국군은 군수품 하나 마음대로 옮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며 “이런 상태서 김백일이가 흥남철수작전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안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을 많이 데리고 나와야하는 특명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언급되고 있는데, 그 당시에 미 10군단장 작전명령 ‘10-50호’에 의해서 흥남철수가 지시, 집행되고 (피난민이) 거제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며 “김백일의 지시와 명령은 없다”고 주장했다.

안 박사는 “(흥남철수작전 때 김백일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 미화시켰거나, 누군가가 픽션(fiction), 소설을 쓴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 안정애 박사가 지난달 29일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편 김백일의 한국군 행적에서도 안 박사는 “김백일은 남한으로 내려와서 국방경비대 3연대장이 되었는데, 도덕불감증을 갖고 있었고, 나쁜 군인이었다”고 단정지었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1967년 펴낸 한국전쟁사 1권 ‘해방과 건군편’에 ‘3연대장(김백일) 배척사건’이 기록돼 있다고 밝히면서 이 사건은 ‘군수품 부정처분사건이다’고 했다.

안 박사는 “결혼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돌아가야 할 (식량인) 레이션(Ration)을 부정처분해, 지금 환산하면 아마 억대 이상이 될 당시 돈으로 150만원을 썼다”며 “한국전쟁사(史) 책에도 레이션 부정 처분 사건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

김백일은 이 사건으로 3연대장에서 부연대장으로 좌천당했다고 했다. 안 박사는 “여순 사건이 발발하자 김백일은 5여단장, 지리산지구 전투사령부 사령관으로 지휘계통에 있었다”며 “이 시기 토벌작전에서는 일반 사병의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민간인을 척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토벌작전에 무리한 민간인집단학살을 초래한 기록이 있다”고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 상반기에 낸 위원회보고서 제 5권 759쪽에는 그 당시 사병 등의 증언을 통해 채록한 내용도 기술하고 있고, 안 박사는 내용 중 일부를 인용했다.

“그 곳에 민간인들이 수십명 잡혀 와 있었는데 군인이 구덩이 앞으로 한 사람을 나오라고 하더니 경찰보고 찌르라고 했습니다. 못 찌르니까 지휘관으로 보이는 군이 저리 비키라고 하더니 군인 한 명 보고 찌르라고 했습니다. 군인이 그 앞에서 총에 대검을 착검해서 가슴을 찔렀습니다. 가슴을 찌르고 나면 칼이 잘 빠지지 않으니까 가슴을 팍 걷어 찼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구덩이 속으로 넘어졌습니다. 한 사람을 찌르고 나면 다음 사람 보고 구덩이 앞으로 나오라고 하고 다른 군인이 나와서 대검으로 찔렀습니다. …… 죽지 않고 산 사람이 흙을 덮는 과정에 머리를 내밀고 나오려고 하자 군인이 가서 그 사람 머리를 밟아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고 다시 흙을 덮었습니다.”

안 박사는 결론에서 “김찬규는 일본 패망 후 악명 높았던 특설대 출신이라는 딱지가 자신에게 불리할 것으로 판단, 이름까지 바꿔가며 남하하였다”며 “파렴치한 부정행위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득세하던 남한 국방경비대에서 승승장구, 여순사건 시 토벌작전을 전개하면서 특설대 경험을 살려 지리산 일대의 일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지휘관의 위치에 있었다”고 했다.

“김찬규와 같은 특설대 출신들의 반민족적ㆍ몰역사적 형태를 좌시하는 것은 역사에 또 다른 죄를 짓는 행위다”고 끝을 맺었다.

안정애 박사는 지난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팀장으로 거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과 보도연맹 사건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안 박사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국방군사연구소 연구원, 2005~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장 등을 맡았으며 발표 논문에 한국군 관련 논문이 다수를 이룬다.

안 박사는 ‘주한 미군사 고문단에 관한 연구’(1996),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공저, 2000),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공저, 2000), ‘한국전쟁기 산청, 함양, 거창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의 실체 및 조작, 은폐공작’(2010)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작권자 © 거제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