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청 문화공보과 윤승구 씨

▲ 윤승구 씨
삭풍은 머리카락을 휘감고
바지춤은 냉기로 가득한데
가쁜 숨소리 고르며
발걸음 힘겹게 다가선 옛터

부서져 흩어진 성(城)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잡초우거진 샘의 정수(渟水)는
을씨년스럽게 인적을 더듬고 있네.

사선(死線)을 넘어온 옥체(玉體)
머물다간 흔적 찾을 수 없고
인고(忍苦)를 버텨온 거송(巨松)
깨울 수 없는 천년을 보듬고 섰구나.

꿈을 좇아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간 님의
한 맺힌 절규 들릴 듯 말듯 하니
상기(想起)하는 심중(心中)에 처연(凄然)함이 인다.

이 글은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2005년 겨울의 어느 날 망설임으로 미루어 두었던 ‘거제둔덕기성’(폐왕성)을 오르며 적은 글이다.

이 글을 다시 대하니 분노와 증오를 삭이지 못하고 후회와 원망을 보듬고 여기까지 달려왔을 의종왕의 아픔이 가슴 시리게 다가서던 기억이 새롭다.

성에 올라서니 솔 향이 코끝에 머물다 찬 바람에 흩어지고 여기저기 널 부러진 돌무더기들과 정연하지 못한 정비의 아쉬움이 가슴을 흔들었다.

왜? 이래야만 했을까!
좀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복원을 하던 정비를 하던 한꺼번에 하면 될 것을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달려들었다.

세월이 한 손 가득 차고 넘칠 즈음 글쓴이는 성안의 동문지와 건물지 발굴현장에 서 있었다. 그 자리는 지난 날 눈에 들어 왔던 아쉬움의 흔적들이 완전한 성을 복원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성은 단순히 폐위된 군왕과 관련된 부분만이 아니고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제시의 정체성 확립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었다.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문화재청으로 발굴현장으로 발품을 팔고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지표조사를 시작한지 10년 만에 경남도지정 문화재인 폐왕성이 국가사적 거제둔덕기성으로 승격 될 수 있었다.

선조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면 밝지 못하고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다면 어질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런 연유로 둔덕기성은 문화시민의 긍지와 자부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 박물관이라 할 만큼 많은 성지를 보유하고 있는 거제시는 희망을 가지고 제2, 제3의 둔덕기성을 만들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다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둔덕기성 종합정비계획이 마련 중에 있으며 그 계획안은 올해가 저물기 전에 멋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안겨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둔덕기성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문화재로 탈바꿈 될 것이다.

우리는 문화재를 논할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전문가도 주저하는 얘기를 무지와 편협된 생각으로 문화재정비 잘못 운운하는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험칙에 의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화재는 지표조사를 통한 시․발굴 및 그 시대의 기록 등을 통하여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원형에 가깝게 보수 복원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둔덕기성을 사적으로 지정하면서 거제시와 협력해 국민과 함께 가꾸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보존․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보도자료 말미에 남겼다.

최근 지상보도를 통해 거제시의 문화재가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는 것은 문화재와 함께 키워가고자 하는 거제시의 꿈을 어둡게 하고 있다.

고려 의종이 쌓았다고 알려진 둔덕기성이 삼국시대 때 초축되고 고려시대 때 다시 쌓았던 성으로 축성법 변화 연구에 가치가 있음이 밝혀졌듯 거제시에는 복원하고 비밀을 풀어야 할 많은 성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제 문화재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문화재를 경제적 재산적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현재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고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의 의미로 받아 들여 주는 시민의 의식변화와 함께 사실 뒤에 감추어진 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질책과 평가가 있을 때 거제시 문화재는 세계에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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