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치 초년생’ 박원순 무소속 후보에게 일격을 당한 기존 정당들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후보를 냈지만, 서울 시민의 민심을 얻지 못했다. 민주당은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내줘야 했다. '정당정치의 위기다. 국민은 빠르게 변화고 있는데 정치는 변화하지 않고 있다가 보기좋게 당했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안이한 정치의 자업자득이다.'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다 22일 한미FTA 국회 강행처리로 정치가 초겨울 날씨만큼이나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거제서 내년 4월 11일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고 표밭을 누비고 있는 잠룡(潛龍)이 10여명 되는 듯하다. 국회의원은 한 명인데, 잠룡이 너무 많아 누가 누구인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다.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최근 이런 말을 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겠다고 하는 사람과 여러 행사장에서 열 번 넘게 만났는데,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기분이 별로 안 좋더라."

"정치란 사람사업인데, 그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사람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수행하는 사람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 사진을 일일이 찍도록 해 사진 자료로 만들면 어떨까. 참모가 언제 어디서 만난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고, 연락처는 어떻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다는 등의 사진첩을 만들어 주면 될 것 아니가. 시간 날 때마다 사진첩 보면서 전화해서 그때 만나서 반갑다 등의 안부 전화를 하면 더 없이 좋아할 것 아닌가."

그동안 국회의원 선거보도에 다소 소홀했다. 좁은 지역에서 자칫 잘못해 어느 특정 후보를 홍보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또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어느 특정 후보에게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13일은 내년 4월 11일 국회의원 120일 전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언론보도를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요즘 출마예정자들이 보내오는 보도자료 하나, 인물 동정 하나, 사진 한 장에도 출마 예정자들의 활동의 정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어떤 출마예정자의 보도자료는 정성이 베여있고, 다른 출마예정자의 보도자료는 성의없이 의례적으로 보내는 것이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보도자료가 출마예정자들의 활동의 정도를 읽을 수 있는 가늠자이다.

‘선거는 종합예술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자동차와 선박 등이 첨단 기술의 종합예술품이듯이 선거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후보자의 자질 능력 사람됨을 비롯해 조직, 홍보, 선거자금 등이 톱니바퀴처럼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어느 한 곳이 부족하면, 그랜저에 티코 바뀌를 달아놓은 것과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출마예정자들 개개인의 국회의원 도전에 대한 치열함과 선거전략의 치밀함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정책과 비전은 눈에 보이지 않고, 선호하는 몇몇 지역언론사 찾아가 기사꺼리(?) 건네는 ‘꼼수’ 정치만 보인다. 시민들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시민에게 다가가는 ‘큰 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선거는 시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고, 후보자의 진정성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많은 후보 중 특별히 그 후보에게 마음이 더 끌려야만 그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유권자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투표일 투표소에서 붓뚜껑으로 어느 후보자를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그 순간까지 유권자의 마음은 변화무쌍하다. 시민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남모르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선거가 140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비후보 등록 전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만,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다.

새벽 바람이 매우 차가워졌다. 6시 갓 지나 어둑한데도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통근 버스는 근로자들을 싣고 새벽을 가르고 있다. 새벽 시간, 조선소 앞에서 '저는 누굽니다', 새벽 등산길에 '저는 누굽니다', 어판장에서 '저는 누굽니다'하면서 시민의 어려움과 바램에 귀기울이는 출마예정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 지 의문이 간다. 이러한 부지런한 활동까지 선거법 위반으로 옭아매지는 않을 것이다. 출마예정자들이 국회의원 당선 후에 누릴 각종 권한과 혜택을 생각한다면 140여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촌음(寸陰)이다. 일각(一角)이 여삼추(如三秋)와 같은 지루함을 느낀다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요즘 지역 현안을 놓고 '그 일은 내가 큰 역할을 했다'는 식으로 갑론을박이다. 지역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선량이 되겠다는 사람보다는 낫다.

고현동 주민 S 씨는 "니가 했니 내가 했니 다투는 와중에 예산 지원이 끊기고, 지역 현안이 없던 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거제는 섬이기 때문에 민심이 특이하게 흐른다. 일반적인 민심의 흐름은 웅덩이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과 같다. 물결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사그라진다. 하지만 거제는 섬이기 때문에 민심의 물결은 섬 끝으로 퍼져나갔다가 물결이 없어지지 않고 다시 되돌아온다. 되돌아오는 민심은 진실성이 담겨 있는 민심이다. 진실하지 않은 민심을 퍼트려 한 두 번 왔다갔다하면 민심의 파도는 거세진다.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바다는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것이 민심이다.

▲ 김철문
그릇이 넘쳐흐를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진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밝혀지고 알게 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맹자의 일절과 '자신을 남의 뒤에 두는데도 오히려 남보다 앞서게 된다. 찰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드나 그 속을 비워야만 그릇으로써 쓰임이 된다'는 도덕경 구절이 갑자기 떠오름은 무슨 연유일까?(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후기신이신선, 선치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後其身而身先,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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