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대학교 박상철 교수

몇 개월 전에 공식적인 업무로 짧은 기간 동안 러시아 연해주지역의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원래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으로 러시아 국가 문장(紋章)을 보면 머리가 2개 달린 쌍두 독수리인데 이 쌍두 독수리의 머리는 각각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즉 유럽과 아시아를 모두 지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1시간 40분정도 지난 후 필자 일행은 아르촘 지역에 있는 블라디보스톡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조그만 공항을 나서니 여행사에서 보낸 고려인 안내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된 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 시내로 향하였다. 차선은 우측통행이나 운전석은 차 오른쪽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느낌이나 반면에 시내버스는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한국산 중고버스가 운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공식적인 방문 및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잠시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둘러보았다.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첫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을 방문하였다.

기차역은 1912년에 제정러시아 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며 건물 자체는 크지 않으나 러시아 건축양식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에는 왕실의 대관식 장면과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열차 철로 옆에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모스크바까지 9,288km 운행하였던 증기열차 일부분이 전시되어 있다. 기차역 바로 옆에 항만 터미널이 있는데 대한민국의 속초를 출발하여 러시아의 자루비노를 거처 최종 블라디보스톡 항에 도착하는 여객선이 정기적으로 운항되고 있다. 주로 단체 여행객들이나 연해주 지역으로 무역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 레닌 동상
기차역 앞에 우체국이 있고 그 옆에 레닌(본명 Vladimir Ilich Ulyanov, 1870∼1924)동상이 있다. 처음에는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광장 중앙에 세워졌으나, 1970년대 레닌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 현재 위치로 옮겨져 세워져 있다.

러시아 각 지역에는 대부분 그 지역의 유명한 혁명가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레닌 동상은 러시아 전 지역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레닌은 아직도 러시아 사람들 마음속 깊이 있는 듯하다. 경제체제는 자유경제 체제로 개방은 되었지만 지금 경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여 삶의 질은 더욱 나빠진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고, 안정되었던 그 영광의 시절을 더욱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 신한촌 기념비
하바로프스카야 거리에는 비운의 역사가 새겨진 한인 신한촌 기념비가 있다. 조선시대에 러시아 연해주로 진출한 선조들이 최초로 집단 거주지를 형성했던 곳으로 고종 때인 1860년 초 러시아에 진출한 한인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인촌을 건설,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러시아 근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 형성 후 1937년 민족주의를 우려한 스탈린의 2차례에 걸친 강제이주 정책으로 한인들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강제로 기차에 태워져 머나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되었다.

지금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대부분 그 때 한인들의 후손이며, 최근 중앙아시아 지역이 CIS에서 독립한 후 각국의 민족주의 정책 때문에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많은 고려인들은 연해주 지역인 블라디보스톡과 특히 우수리스크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한인촌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아파트 숲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으며, 근래에 해외 한민족연구소는 3·1독립선언 80주년이 되는 1999년 8월 15일 선열들의 독립정신과 재러·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후손들의 역사인식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한인들의 최초 정착지인 신한촌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의 기둥은 세 개인데 왼쪽 것은 북한, 가운데 것은 대한민국, 오른쪽 것은 고려인 그리고 주변의 8개 작은 돌들은 각 지역의 해외동포들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 안중근 의사 기념비
블라디보스톡 주립의과대학 교정에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있다. 주립의과대학생들은 알려지지 않은 외국인 기념비가 자신들의 교정에 건립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한국인들이 여행시 이곳을 방문하면 신기한 듯 바라본다. 기념비는 보건신학연구원과 블라디보스톡 주립의과대학이 동양의학의 발전과 한국과 러시아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2002년 9월 2일에 건립하였다.

비문의 글자색이 녹색이어서 가까운 곳에서 보지 않으면 읽기가 어려우나 비문에는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한글로 쓰여 있고 밑에는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기념비의 뒷면에는 왜 블라디보스톡에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었는지 설명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하였다 정도만 알고 있지만 실제 안중근 의사의 중요한 항일투쟁 활동시기(1907∼1910)는 블라디보스톡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기념비가 이곳에 세워지게 된 이유도 신한촌 기념비처럼 러시아에서는 땅을 개인이 소유할 수 없고 임차를 해야 하는데 러시아 주정부가 이곳 외엔 토지를 임차해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다소 낯선 주립의과대학 교정에 건립하게 되었다.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투사의 기념비가 이런 곳에 동상도 없이 다소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 극동대학교 한국학대학 건물
극동대학교 내에 한국학대학 건물이 있다. 고합그룹 장치혁 회장이 한국과 러시아의 우호증진과 한국학 연구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사재를 털어 1995년에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을 건립하여 극동대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대학당국에서는 그 높은 뜻을 기려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하셨던 기증자의 부친 장도빈 선생의 이름을 기려 ‘장도빈기념관’이라 명하였다. 한국학대학은 원래 극동대학교 동양학학부 소속 의 한국학학부였으나 장도빈기념관이 완성됨으로써 한국어문학과, 사학과, 경제학과를 갖춘 단과대학 규모의 한국학대학으로 크게 변모하였다.

▲ 장도빈 선생 동상
현재 한국학대학에는 2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학생 수로 보면 한국학대학은 한국어를 전공으로 배우는 면에서 아마 한국 외에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대학일 것이다.

2010년에 거제대학교를 방문하여 교육 및 산학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한 바 있는 극동기술대학교(FENTU, 현 연방대학교)를 방문하였다.

극동대학교(FENU)는 인문·상경학부 중심의 대학이며 극동기술대학교는 공학부 중심의 대학이다. 유럽의 대학처럼 전공학부에 따라 학과 건물이 시내 여러 곳에 분산해 있다.

조선해양공학과 건물과 용접공학과 건물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으며 학과장과 교수님들로부터 실험실을 안내받았다. 현재 산업체에서 의뢰받아 수행하고 있는 연구분야를 살펴보면 한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 산업체 연구소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것도 있고 또 한국에서는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전혀 연구를 하지 않는 분야도 있었다.

▲루스키섬에 건설중인 연방대학교 교정
이것은 아마 각국의 관련 산업체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의 차이점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 조금 염려가 되는 것은 외부와 학문적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면 창조적일 수는 있지만 잘못하면 효율적인 결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교류 및 정보교환, benchmarking을 하는 것이다.

지금 블라디보스톡 지역의 여러 대학교에는 큰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러시아 중앙정부에 의하여 극동대학교, 극동기술대학교 등 4개의 대학교가 합병하여 학생 수 5만 명 규모의 대규모 연방대학교(FEFU)로 바뀌고 학교 교정은 APEC정상회의가 끝나면 루스키섬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APEC정상회의가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기 때문에 통신망 확장, 신규 주택단지 개발, 도로 포장 및 건설,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주정부는 총체적으로 노력하고 있고, 회의장소인 루스키섬은 대대적으로 신규 개발되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이며 중앙정부의 블라디보스톡 개발정책, 풍부한 지하자원과 소비시장으로 기회의 땅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관련된 정부 규정이 까다롭고 자주 바뀌어서 상황변화에 외국인으로서 러시아인처럼 유연하게 적응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학교간의 교류에 있어서는 사업분야와 달리 차이가 있겠지만, 산업체를 매개로 하는 산학협력 분야에 있어서는 서로 보완이 되는 방향으로 타협안을 찾는다면 오히려 쉽게 희망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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