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년 만에 발굴, 문화재청,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거제시청을 싸고 있는 고현성의 성곽 원형이 588년 만에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고현성 원형이 발굴된 지점은 거제시청 오른쪽 끝자락 산호화성아파트 뒤편 주택가이다. 고현동 32, 50번지 두 곳이다. 그동안 단독주택으로 있던 지역을 매입해 원룸 등 다가구주택을 짓기 위해 터를 파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 고현성 성곽이 발굴된 지점
고현동 32번지 1차 발굴지점은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에 조사보고서를 올려 회신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건물 신축은 성곽과 일정 거리를 두고 신축해라”고 의견을 냈다.
▲ 고현동 산호 화성아파트 뒷편 고현성 성곽 발굴지점
고현동 50번지는 최근에 부지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문화재 자문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12일 성곽 현장을 방문해 조사를 벌였다. 거제시청 문화공보과 담당공무원은 “현장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문화재청에 보고할 예정이다”며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1차 발굴지점의 의견과 같은 회신이 올 것 같다”고 했다.
▲ 고현동 50번지 고현성곽 발굴현장
▲ 발굴현장의 표지판
고현성은 조선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축성 방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평지 읍성으로 성 둘레가 2㎞에 높이가 7m나 되었다. 계룡산 기슭의 동쪽으로 뻗은 대지 위에 평면 선형으로 축조된 석축성이다. 성문이 동서남 세 방향으로 나 있고 성 둘레에는 해자(垓字)를 둘렀다.

축조 수법은 외벽의 경우 언덕의 비탈진 면의 맨땅을 'ㄴ'자형으로 절개하고 그 위에 자갈을 깔아 다진 다음 장대석(長臺石)을 일렬로 배열하여 기단석으로 삼고 그 위에 성돌을 올려놓았다. 내벽의 경우는 당시의 지표면을 50~60㎝ 깊이로 파고 그 위에 사람 머리 크기만한 돌을 쌓아 올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둘레가 3.038척이고 높이가 13척이다. 그 크기는 남해안의 읍성 가운데 중간 정도이며 높이는 높은 편에 속한다"라고 되어 있다. 1432년(세종 14) 성 안에 40여 칸의 건물을 지은 후 사등성에 있던 관아를 이곳으로 옮겨 읍성으로 삼고 적의 침입 때 인근의 주민이 들어와서 지키도록 하였다.

1592년(선조 25) 5월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하여 함락된 때도 있었으며 남해안 수군(水軍)의 진영에 이웃한 요새였다. 1663년(현종 4) 관아를 지금의 거제읍으로 이전함에 따라 읍성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1423년(조선 세종 5) 당시 관아가 있던 사등성(沙等城)이 좁고 물이 모자라 성을 지키기가 어려워지자 새로이 읍 성터를 찾아, 경상도민 2만여 명을 동원하여 9년에 걸쳐 쌓은 거제의 읍성(邑城)이다.

1950년 6·25전쟁 전에만 해도 원형에 가까운 성벽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UN군에 의하여 포로수용소가 설치될 때 성의 일부를 헐어 현재는 남서쪽 부분 600m 정도만 옛 모습의 성벽을 남기고 있다. 1991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부분적인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그에 따른 보고서가 간행되었다. 그리고 1992년부터 고현성 복원 사업이 시작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현재 성내의 중심부에 거제 시청이 자리잡고 있다. 1979년 5월 2일 경상남도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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