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아픔을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된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이 25일 '마음의 고향'이라고 말하며 애착을 보인 거제시를 찾았다.

거제상공회의소(회장 원경희)가 마련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김우중과의 대화'는 15년 전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김 전 회장의 비공개 증언을 담은 대화록이다.

그가 거제에 온 것은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 첫 공식 방문이다.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학교법인 지성학원 이사장, 권민호 거제시장, 반대식 거제시의회 의장, 김임순 거제도애광원장, 신영균 전 대우중공업 사장, 박동규 전 대우중공업 조선소장, 강재규 대우병원장, 추호석 대우병원 이사장, 김창규 경남도의원, 전기풍·김복희 거제시의원, 빈대인 부산은행 부행장, 정성대 대우조선해양 총무팀장 등 지역 인사들과 시민 등이 참석했다.

430석 규모 객석이 가득찼고 자리에 앉지 못한 상당수 참석자는 통로에 서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를 지켜봤다.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은 객석 가장 앞줄 가운데에 앉아 비교적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인사말을 낭독하러 무대에 오른 김 전 회장은 "거제시는 저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15년 전 저는 제 손으로 일구어 놓은 기업 모두를 한순간에 잃었고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인사 말씀조차 전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억울함도 있었지만 거제시민 여러분처럼 저를 끝까지 믿어주는 분들이 계시리라는 기대 하나로 기나 긴 인고의 세월을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10분 정도 걸린 인사말이 끝나자 행사 참석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거제시는 김 전 회장에게 전달한 감사패에 '대우그룹회장 김우중'이라고 썼고 "회장님께서 마음의 고향에 남기고 간 도전과 희망의 역사가 오늘날 25만 거제시민의 삶에 윤택함과 행복으로 이어짐에 감사드리며…"라는 내용을 넣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삼성중공업과 함께 거제지역 경제를 이끄는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인 대우중공업 사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사가(社歌)였던 '대우가족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행사장을 나섰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인사말 전문

거제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거제시는 저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오늘 대규모 ‘저자강연회’를 열고 저를 초대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15년 전 저는 제 손으로 일구어 놓은 기업 모두를 한 순간에 잃고,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인사 말씀조차 전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억울함도 있었지만, 거제시민 여러분처럼 저를 끝까지 믿어주는 분들이 계시리라는 기대 하나로 기나 긴 인고의 세월을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 뵈니 제 마음속의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거듭 ‘제 마음의 고향 거제’, 그리고 이곳 시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책이 출간된 후에 제가 사적인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책을 낸 것처럼 보도하는 신문기사도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동안 국가와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앞만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으로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제 저는 미련이나 욕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역사에서 정당하게 평가받고자 하는 마음조차 욕심이라면 이 또한 사치로 여기겠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왜 우리가 저성장과 정체라는 나쁜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겠는지를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이 문제가 외환위기 당시 잘못을 기업에게 돌리고 과도한 구조조정을 시행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과 고용의 질 저하, 기업의 투자의욕 상실 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근원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제시와 대우조선에 대해서는 제가 이 곳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각별하고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한 때는 이곳이 민주화 열풍 속에서 전국적인 노사분규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관리혁명이란 이름으로 혹독한 혁신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해냈지만, 외환위기 당시에는 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대우조선을 외국에 팔아야 한다는 정부와 여론의 압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만일 이러한 압력에 굴하여 회사를 팔았더라면 지금의 모습은 대우자동차와 같은 초라한 조립공장으로 변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긴 시간동안 수차례 어려운 고비를 슬기롭게 헤쳐 왔기 때문에 이제는 대우조선이 자랑스런 우리 기업으로 남아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경제가 발전을 지속하려면 이처럼 역경에 굴하지 않고 길게 내다보면서 산업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최근 들어 제조업이 경시되고 기업의 장기투자 의지가 약화된 데 대해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대우조선해양이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을 우리 경제의 앞날을 위해 반드시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거제시는 세계 최고의 조선기지를 품은 저력의 도시가 되었으니, 다시 한번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모범이 되고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5년전 대우조선에 머물면서 관리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개혁과 혁신을 추구할 때 많은 근로자들이 저를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거제시민들께서도 물심양면으로 많은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때의 아름다운 기억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아픔을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신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옛날에도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대처할 때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발전을 이룩했지만,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더 큰 곤경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 곳 거제시에서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 전체가 다시 자신감을 회복해 나간다면 정말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의 피땀으로 이룩해낸 ‘자신감과 자부심’을 토대로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지역사회가 모두 거제의 주인이 되고 이 시대와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주신 권민호 거제시장님, 김동진 통영시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원경희 거제상공회의소 회장님과 참석하신 많은 분들께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와 거제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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