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노래 부르러 왔건만 관리 감독 안돼 성매매 노출

거제시, 많은 외국인 거주에 따르는 명암

경남경찰청은 옥포동 소재 외국인 전용 유흥 주점에 필리핀 여성 등을 고용해 찾아오는 외국인 남자 손님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알선한 업주 K 모씨, 외국인 성매수남 매수녀 등 16명을 검거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피의자 K 모 씨는 유흥주점 업주로 올해 9월부터 12월 초까지 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필리핀 여성 등 11명을 가수로 고용, 원룸에 합숙시키면서 체류 목적 외 외국인 남자손님들과 동석시켜 유흥을 돋구게 하는 등 불특정 남자 손님들에게 1회 30만원의 화대비를 받고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국인 여종원 R모씨는 찾아온 외국인 남자 손님 D 모씨 등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거제는 도내에서 가장 많은 8,000여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28일자 신문에 '예술흥행비자'의 문제점을 월요기획으로 보도해 인용보도한다.

이번 사건이 사회문제화된 계기는 지난달 거제 옥포동 모 주점에서 발각된 외국인 여성 감금·성매매 강요 사건 때문에 기획 단속을 한 결과였다. 

필리핀 여성 ㄴ(28)씨가 거제 옥포동 모 주점에 감금돼 성매매를 강요받았다며 먼저 이 주점을 탈출한 필리핀 여성 ㄷ(28)씨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알려졌다. 외국인성매매 피해여성 시설의 보호를 받고 있던 ㄷ씨는 보호시설 소장과 경찰을 대동하고 문제의 주점을 덮쳤고, 주점 인근 원룸에 감금된 ㄴ씨를 구했다.

이들 필리핀 여성은 모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연예, 연주 등'을 하려는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예술흥행비자'(E-6)로 입국해 각 주점에 고용됐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고 무용단에 소속돼 춤을 추는 것으로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성매매로 기획사와 유흥주점 업주의 배만 불려 준 것이다.

E-6비자 존재 자체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예술'과 '흥행'이라는 기준 모호한 두 개의 업종을 한데 묶어 비자를 발급할 때는 예술에, 실제 쓰이기에는 흥행에 무게를 두는 아전인수 격 활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 도내 현황 = 2009년 10월 현재 경남에 등록된 외국인 수는 5만 1733명으로, 서울과 경기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이중 E-6비자로 경남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모두 248명. 이중 절반 이상(56%)이 거제지역에 머물고 있다. 거제에 139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창원 59명, 마산 20명 순이다. 국적별로는 필리핀 195명, 중국 38명, 러시아 6명 등이다. 필리핀 출신이 많은 것이 눈에 띈다.

◆ 서로 '나 몰라라' = 이들 외국인 여성들이 발급받은 비자의 목적대로 체류하고 있는지 관리·감독하는 곳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대놓고 방치되고 있었다. 외국인 여성을 "가수로 일하면서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한국에 데려오는 외국 혹은 국내 공연기획사와 기획사로부터 이들을 파견받아 고용하는 유흥업소 업주의 '양심'에 맡겨둔 셈이다.

E-6비자는 국내·외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외국인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공연 허가를 받은 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발급한다. 기획사는 '파견근로사업체'로 노동부의 허가를 받은 곳이라야 한다. 이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노동부 근로기준국 3곳이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흥을 돋운다는 E-6의 기준이 모호하고 관리·감독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세곳 모두 손을 놓고 있다.

마산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추천서를 갖고 비자 발급 신청을 하면 기획사 운영상태와 외국인 이탈율 등을 확인하고는 비자를 내줄 수 밖에 없다"며 "도내 등록된 외국인 전체의 민원을 8명이서 감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올해 마산출입국관리사무소가 현장 실태조사를 한 것은 5번에 불과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주로 밤 시간대 공연을 하는 모든 업소에 찾아가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흥을 돋운다'는 흥행비자, 옳은가 = 일본은 2006년 흥행비자 발급을 엄격히 제한해 2001년 7만여 명에 달했던 E-6비자 필리핀 여성들이 2008년 2500여 명까지 줄었다.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장은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공연에 관한 것만 심사하고 출입국관리소는 서류만 보고 비자를 내준다. 또 파견업체를 관리해야 할 노동부는 손을 놓고 있다"면서 "기획사들이 영세한데다 난립해 서로 경쟁하면서 무분별하게 여성들을 들여와 싼값에 업소와 계약한다. 업소에서 주는 돈만으로 생활할 수 없는 여성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술시중이나 매춘 등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 예술흥행비자(E-6)란?
-노예계약, 술시중·윤락까지 강요…E-6 비자 입국 외국인,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예술흥행비자(E-6)는 수익이 따르는 음악·미술·문학 등의 예술활동과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연예·연주·연극·운동경기 등의 활동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된다. 이에 따라 오케스트라 단원과 같은 순수 예술 목적(E-6-1), 유흥업소에서 흥을 돋우는 흥행 목적(E-6-2), 용병 등 경기목적(E-6-3)으로 나뉜다.

이 중 심각한 인권침해로 문제가 되는 것은 흥행비자 혹은 연예비자라 불리는 E-6-2비자다.

흥행비자로 입국하려는 외국인은 대체로 두 가지 계약방식을 따른다. 국내 기획사가 현지 기획사와 계약해 여성을 조달받거나 국내 기획사가 직접 현지에서 여성을 모집해 계약을 맺는 경우다. 이들은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계약서를 내민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 따르면 '임금은 계약 만료 후에 지급한다', '휴대전화 등을 가질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면 10일간 급료를 제한다', '무용수는 근무지의 요구가 있으면 낮에도 근무지를 위해 홍보해야 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한 달 동안 급료를 제하고 자신의 경비로 출국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알려졌다. 입국 전 이미 일차적으로 기획사에 유린당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벌칙과 관련한 조항은 지키면서 윤락 금지 등의 약속은 방치된다는 것이다. 업소가 고의로 임금을 주지 않거나 계약조건을 달리해도 기획사는 뒷짐만 지고 있다. 영세한 기획사가 서로 경쟁하면서 업소는 우월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여성 노동자는 생계유지를 위해, 강도 높은 계약 조건을 맞추려고 술시중을 들거나 윤락까지도 강요받고 업주나 직원들로부터 성추행과 폭행을 당하고 있다.

2004년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가 140여 명의 E-6비자 외국인 여성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 같은 실태가 밝혀졌다. 상담소에 따르면 여성들은 한 달에 400∼500달러를 받기로 계약하고 일을 시작하지만 3∼4개월씩 임금체불은 만연한 현상이다. 업주는 임금을 직접 주지 않고 기획사에 맡기고, 기획사는 여성들이 업주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임금을 쥐고 있다. 여성들은 먹고살기 위해 접대나 윤락행위까지 나설 수밖에 없다.

많게는 하루에 10시간씩 하루 7∼8회의 공연을 하고 중간 중간 테이블 접대를 해야 한다. 이른바 2차도 뛰어야 한다. 한 달에 200잔에서 500잔까지 술 판매 할당량을 채워야 하므로 가수라기보다는 '드링킹걸'이라고 불린다. 이를 채우지 못하거나 거절하면 윤락 행위가 강요되거나 임금이 깎인다. 낮에는 광고지를 돌려야 하는데 이를 거절하면 자신의 경비로 출국해야 한다. 정한 시간 외에는 외출이 금지되고 거제 모 업소 사례처럼 감금되기도 한다. 또 몇 명씩 조를 짜서 한 사람이 규칙을 위반하면 연대 책임을 물어 임금을 삭감하는 벌칙을 주기도 한다.

실제 2003년 거제의 유명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던 우즈베키스탄 여성 2명은 상습적으로 폭행당하고 임금을 받지 못해 상담소가 고소를 제기, 기획사 대표에게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와중에 책임 기관 공무원이 상습적으로 향응과 접대를 받은 사실도 적발됐다.

기획사 대표나 업주들로부터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거나 임금이나 출국을 무기 삼아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여러 차례 적발됐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이철승 소장은 "한 업체의 경우 사장이 거의 매일 탈의실로 들어와 '사이즈 검사를 한다'며 팬티와 브래지어를 벗기고 만지는가 하면 숙소로 찾아와 강제추행이나 강간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현행 실질적인 성 산업 수단으로 전락한 유흥업소 공연 활동에 대한 E-6비자 발급을 폐지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등록 또는 미등록 여성노동자에 대한 현실적인 피해 대책부터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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