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도는 임진왜란 초기 연전연승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 거제시의 칠천량 해전 공원 조성 사업, 역사의 일부문에만 초점 맟춰져 있어…수정돼야

경남도가 지난달 2일 거북선 탐사 출항식을 갖고, 하청면 칠천도 인근 해역에 침몰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북선 해저 탐사를 본격 시작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탐사 지역을 칠천도를 중심지역으로 삼은 이유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이 1597년 7월 칠천량에서 왜군에게 대패(大敗)해 거북선 3~5척과 판옥선 등 160척 가량이 침몰하고 수군 1만여명이 전사한 해전 현장이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칠천도는 원균이 왜군에게 대패해 조선 수군의 원혼이 잠들고 있는 섬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의 한 면만을 본 것이다. 칠천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승리의 교두보 역할을 한 중요한 전략지 요충지였다는 역사적 사실(史實)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 칠천도·송진포·황포의 인공위성 사진(구글어스 캡쳐)

임진란 초기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으로 승승장구하던 전략적 요충지가 칠천도, 영등포(장목면 구영), 송진포, 황포였다는 사실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등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옥포대첩, 합포해전, 적진포 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등에서 불패의 신화를 이어간 중심에는 칠천도가 있었다.

▲ 칠천도는 임진왜란 연전연승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자. ▲ 1592년 5월 7일 옥포만에서 왜선 26척을 무찌른 후 '영등포(장목면 구영) 앞바다로 물러 나와 군사들에 나무를 하고 물도 긷게 하여 밤을 지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 6월 7일 정오쯤에 영등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적선이 율포(장목면 대금)에 있다는 말을 듣고 ▲ 6월 7일 '초저녁에 거제 온천량(칠천량) 송진포에 도착하여 밤을 지냈다.' '송진포로 다시 돌아왔다.'

▲ 1592년 7월 8일의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안골포 해전 치르기 7월 9일 '거제 온천도(칠천도)에서 밤을 지냈다.'

▲ 8월 26일 '저녁에 배를 옮겨 타고는 거제 각호사(가조도) 앞바다에 이르러 잤다. 27일 '거제 칠내도(칠천도)에 이르자'

▲ 1593년 2월 8일, '초저녁에 온천도(칠천도)에 이르렀다. ▲ 2월 10일 '밤 10시경에 영등포 뒤의 소진포(장목면 송진포)로 돌아와 배를 대고 밤을 지냈다.' 11일, '군사들을 쉬게 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 12일, '초저녁에 칠천도에 다달았는데, 세찬 빗줄기가 그치지 않았다.'

▲ 2월 13일부터 17일까지 세찬 바람으로 칠천도에 그대로 머물렀다. ▲ 18일 '어둠을 틈타 영등포 뒷바다로 돌아왔다. 사화랑(장목면 황포)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 19일 '서풍이 세게 불어서 배를 띄우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출항하지 않았다.' ▲ 20일 '해가 질 무렵 소진포에 이르러서 물을 긷고 밤을 지냈다.'

▲ 22일 '사화랑(황포)에 이르러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중략) 돛을 달고 소진포에 돌아와서 묵었다.' ▲ 24일 '아침에 출항하여 영등포 앞바다에 이르렀는데 빗발이 세게 몰아쳤다. 도저히 바로 나아갈 수 없어 배를 돌려 칠천량으로 돌아왔다.' ▲ 25일 '바람의 흐름이 순조롭지 못해 그냥 칠천량에 머물렀다.' 26일 '하루 내내 머물렀다.' 28일, '사화랑에서 묵었다.' 29일, '배를 칠천량으로 옮겼다.'

▲ 3월 5일, '칠천량에서 묵었다' 3월 21일, '새벽에 배를 띄워 거제 유자도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22일, '오후에 칠천량으로 옮겨 배를 대었다.' 24일, '아침에 거제 앞 칠천량 바다 어귀로 진을 옮겼다.'

▲7월 4일 오후 2시경 영등포 앞바다에서, 7월 9일 '거제 온천도(칠천도)에서 밤을 지냈다.

칠천도가 역사 기록에는 온천도, 칠내도 등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장목면 송진포는 소진포, 장목면 황포는 사화랑으로 기록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역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칠천도는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칠천도가 가지는 역사적 무게가 얼마나 큰 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야말로 역사의 보고(寶庫)가 칠천도이다.

경남도가 추진하는 이순신 프로젝트는 3천500억원의 예산이 투여되는 김태호 도지사의 역점사업이다. 이순신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거북선이 될 것이다.


칠천도에서 거북선 잔해라도 찾아진다면 거북선의 부가가치와 칠천도의 중요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거제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양대 조선소의 부가가치보다 더 높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제는 무엇인가. 거북선이 거제에서 찾아졌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해야 할 것인가? 거제는 거북선 찾기를 강 건너 불구경만 해야 하는가?

▲ 칠천량 해전공원 조성사업 … 올바른 역사인식 속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문제는 거제시의 역사 인식 수준이다. 거제시는 40억원의 예산으로 칠천도에 '칠천량 해전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으로 부지를 물색중이다. 원균이 대패한 칠천량 해전을 중심으로 '칠천량 해전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8,250㎡의 부지에 해전공원, 위령부조, 유물전시관, 영상관 등 짓겠다는 것이다. 거제시는 칠천량 해전공원 조성 기대효과로 '임진왜란사의 재조명을 통한 우리 역사의 소중한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는 일이다. 칠천도는 무진장한 역사가 땅 속에 묻혀있다. 소중한 역사는 땅 속에 고스란히 묻어놓고, 엉터리 역사의 '산교육장'을 만들었을 경우, '죽은 교육장'이 될 것은 뻔하다.

'칠천도는 임진왜란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데, 역사를 땅 속에 묻어놓았군요' 하면 뭐라 답할 것인가. 그런 것을 잘 몰랐는데 하면서 머리만 긁적거리고 말 것인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역사를 발굴하고 관광자원화하기 위해서는 거제시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올바른 역사인식 속에서 역사의 복원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거제는 이순신 프로젝트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하고, 칠천도는 '화룡점정'이다.

거제시는 요즘 테스크포스팀(Task Force Team)이야기를 자주 등장시킨다. 실체가 있는 지 없는 지 명확하지 않지만, 국비 확보를 위해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공영주차장 고려개발 부지 관련 테스크포스팀 구성했다, 고현만 인공섬 신도시 조성 관련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할 것이다 등등. 칠천도와 이순신, 그리고 거북선, 임진왜란사 등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할 용의는 없는지 묻고 싶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는 말이 있다. 과거가 미래를 여는 척도이다. 미래는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 역사를 안받침 삼고, 현재를 디딤돌삼아 미래로 나아가면서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한 역사를 다음 세대에 반대급부없이 그냥 물려주는 것이다. 다음 세대는 선조들이 물려준 역사를 이어받아 또 미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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