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범용의 경제단상(經濟斷想)

▲ 김범용 자유기고가
오는 11월 11~12일 서울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 때문에 대한민국 환율은 G20환율이라는 말이 있다. 강만수 전 재경부장관의 1,200원 정책 환율로 만들어진 환율조작국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줄 곳 유지해오든 강만수 환율인 달러당 1,200원에서 1,100원대까지 환율이 떨어져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아냥이다.

문제는 이런 비아냥이 아니라 외환당국의 뻔히 보이는 스탠스를 알고 있는 외국의 환투기꾼들이 엄청난 달러를 한국의 주식시장에 쏟아 부었다가 G20회의를 전후하여 원화강세 때 크게 한탕하고 빠지려는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경제가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경제를 부양할 마지막 수단이 수출밖에 남지 않았다는 고백으로 환율전쟁을 시작했다. 환율은 바로 탄광의 카나리아이고, 미친 듯이 오르는 금값과 현물가격은 초 저금리와 끊임없이 윤전기를 돌려 찍어 내는 신용화폐인 종이화폐의 ‘가격’을 버리고 ‘가치’로 도망가는 자본의 적나라한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자본'에는 민족도 국가도 명예도 양심도 없다.

미국에 이어 일본은행도 몇 일전 전격적으로 제로금리를 발표하여,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2010년 금년 초반에 거만을 떨면서 출구전략을 논의하든 각국 경제정책의 수뇌들은 이제 출구전략이란 말을 속된말로 쪽팔리니까 이젠 대중들로부터 감추어두고 있다. 이렇게 불과 1년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게 막장으로 가는 것이 세계 경제의 현주소이다.

미처 그때는 몰랐지만, 2008년 가을에 한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아프리카나 사막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한 시대의 종언(終焉)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지금 이시대가 작년에 풍미했던 The New Normal이란 말처럼 새로운시대라는 점에는 많은 정치경제학자들이 동의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달라(Dollar) 체제와 제국주의 미국의 종말 같은 불편한 예언을 쉽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경제가 심리라고 말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상투적인 수단이다. 당장 몇 달도 못 내다보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의 실력에서는 심리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물론 실력을 탓하기 이전에 현재의 세계경제체계가 너무 복잡하다.

그러나 진실은 복잡성을 말하기 이전에 달러(Dollar) 제국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 자체가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을 뿐이다. 그리고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후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자본주의와 주류경제학인 케인즈주의자도, 통화론자도, 신고전주의 등 그 어느 누구도 이 사태가 어떻게 결말을 맞을지 모른다는 것 정도가 확실한 정보이다.

세계적불황이나 공황을 해결하는 간단한 해결책들도 있긴 하다. 소위말해 대규모 전쟁이라는 가장 간단한 사태해결 방법들도 있지만, 음모론에 미친 사람들이 아니면 그런 말들을 꺼낼 수는 없을 정도의 문명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까 문제해결이 더 어렵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막장의 모습을 살펴보자.

미국은 기술적으로 파산상태이다. 인용이나 통계는 흘러넘치니까 과감하게 생략하겠다. 미국이 선택할 방법은 '디폴트(채무불이행=국가부도선언)'를 선언하거나 큰 폭의 달러 절하(1 달러가 500원 정도)를 용인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부채 총규모는 앞으로 2년 안에 GDP 의 100%에 도달하게 된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10%를 이미 넘어 섰다. 미국 정부 예측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이제 적자 재정 상태를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다. 세금으로 정부부채의 빚을 갑기에도 바쁘니까 말이다.

맥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대한민국이 채무 순위가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나라로, 정부에서는 정부의 공공 채무라는 것이 40%도 하고 안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가계나 정부 통합적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 300%가 넘는다. 중병이 든 경제이지만, 혹시나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을까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이다.

신자유주의자들과 신 고전경제학파들이 주도한 미국의 지나친 규제완화와 시장에 대한 맹신이 결국 이번의 화(세계경제의 파국과 전 세계적인 양극화 현상과 실업사태)를 불러들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은 알지만 이를 해결할 해답은 알지 못한다. 단지 전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와 제국주의 미국의 달라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시한부 생명이란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번 위기의 극복이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전 세계적인 양극화가 너무나 급속하게 진행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즉, 착취를 당해 주어야 할 중산층이 급속히 줄고 착취 할래야 할 것이 별로 없는 저소득층만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다.

심각한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광범위한 중산층, 서민들의 구매력이 축소되었고, 따라서 경제회복에 절대적인 민간소비가 악순환적인 축소과정에 들어가서 경제위기가 더 오래 가고,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 세계적인 불황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4대강 사업 같은 케인즈식 재정정책도 이번엔 전 세계적으로 통하지 않았고, 이자율을 제로로 만들고, 막대한 돈을 푸는 금융정책으로 각국이 지난 2년을 버텨왔음에도 전 세계의 내수시장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수출만이 고용을 유지하고,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고, 수출을 위해서는 환율 때문에 각국이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환율문제 같은 세계경제가 처한 문제를 논의할 G20 세계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고, 대한민국이 의장국이라니 좋은 일이다. 어쩌면 이만큼 한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G20의 결과에 기대할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좀 과장하면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그믐밤에 헤드라이트가 고장난 자동차로 달리는 형국이다. G20에 참가하는 세계정상들도 세계경제란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소원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의 위기인 이번의 세계공황(혹은 불황)과 세계경제체계의 재편과정을 정말 영리하게 잘 버텨가길 바랄 뿐이다.

빈자(貧者)들의 대한민국과 부자(富者)들의 대한민국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자들의 허례허식, 사치를 극히 혐오했다. 아니 그보다 더 서민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자극해서 국민총화(國民總和)를 해치는 부유층의 형태를 경계했다.

우리나라가 칼라티비를 수백만 대씩 수출할 때에도 우리나라에선 서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칼라티비 방송이 금지되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칼라티비가 대중화될 정도로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수준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칼라티비의 국내판매를 허용했었다.

전세계에서 [평등]에 대한 정서가 한국인만큼 높은 민족이 없다는 것을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는 빈자(貧者)들의 대한민국이 있고, 부자(富者)들의 대한민국이 있다.
어려움 속에 경제기적의 꽃을 그 이면에는 개발독재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애국적 희생을 감내하게한 박정희 대통령식의 [국민총화의 힘]이 있다. 그런 [국민총화의 힘]을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나 보다.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면, MB정부 초반의 부자내각과 후안무치한 부자중심의 정책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번 세계적인 불황의 근본원인은 약탈적인 금융자본주의를 만든 미국이 제공했지만, 이 사태로 인한 무고한 피해자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한다.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고통 받는, 갈수록 삭막해지고, 추워질 '빈자들의 대한민국'이 서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세계 대공항 시절에 빈자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역사적인 기록들이 증명하고 있다. 캠브릿지대의 장하준 경제학 교수가 말했다. “좋은 경제정책에 깊은 경제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학의 하위학문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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