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조선사와 하청업체들이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을 낳은 조선업계 원·하청업체 근로자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적정 하청 대금 지급과 임금 체불 방지를 골자로 하는 상생 협약을 발표했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공정 진척도에 따라 주는 대금인 ‘기성금’을 인상하는 대신, 하청업체는 소속 근로자의 임금을 인상하고 재하청은 줄이는 것이 주 내용이다.

정부는 원·하청업체 근로자 사이에 임금과 고용 안정성 격차를 낳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위해 산업별 원·하청업체들 간의 자발적인 상생 협약을 유도해 왔는데, 그 결과물이 조선업계에서 먼저 나온 것이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 5대 조선사와 각사의 사내 협력사 협의회 대표, 고용노동부, 울산시는 27일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이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조선업 상생협의체’에서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만들어낸 것이다.

원청 5사는 기성금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원청이 기성금을 적게 줄수록 하청이 근로자들에게 줄 수 있는 돈이 줄어들어 원·하청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상응해 하청업체들도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률을 높이기로 했다. 상생협의체는 연말까지 정부 자금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하청 근로자 간 임금 격차의 최소 기준을 설정해 목표치로 제시하기로 했다.

임금 체계 개편도 추진한다. 원청 근로자들은 근속연수가 길수록 임금을 많이 받는 연공급 위주 임금 체계를 적용받는 반면, 하청 근로자들은 근속연수나 숙련도 등과 무관하게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아, 임금 체계로 인해 원·하청 임금 격차가 더 커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원·하청은 용접공 등 일부 직종부터 우선적으로 직무·성과급 위주 임금 체계를 적용하고, 다른 직종에 대해서도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일수록 임금을 많이 주는 방식으로 임금 체계를 바꿔나가기로 했다.

또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이 체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주는 대금 가운데 하청 근로자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은 ‘에스크로 시스템’을 통해 결제하기로 했다.

은행 등 제3자의 감시하에 있는 계좌에 원청업체가 돈을 넣고, 하청업체가 임금 지급 용도로만 인출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하청업체가 원청업체로부터 받아온 일감의 일부를 단기 근로자들에게 다시 맡기는 재하도급 관행도 개선하기로 했다.

원청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프로젝트 협력사’로 단계적으로 전환해 다단계 하청을 없애간다는 것이다.

이번에 체결된 협약이 이행될 수 있도록 상생협의체는 해산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한다. 5년 이상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개선 방안을 계속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임금 체계를 개편하는 업체들을 지원하고, 불황기에 근로자들의 사회보험료를 체납한 업체들에 대해서는 납부 노력을 보이는 것을 전제로, 연체금을 면제해주고 체납 보험료 원금만 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구제 조치를 해주기로 했다. 조선업 인력 육성을 위한 지원도 병행된다.

하지만 이번 방안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조선업이 활황기에 접어들어 조선업체들이 구인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하청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 필요성에 대해 원·하청업체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조선업 경기가 위축될 경우 하청업체 지원 규모 등을 놓고 원·하청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조의 대응도 변수다.

이번 협약 체결에는 노조가 빠져 있다. 조선업체 노조들의 모임인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이날 “노조를 배제한 반쪽짜리 협약”이라며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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