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서 일하다 다친 두 사람…후유 장애 남았지만 도전 계속
각각 옥내제어·용접 분야 출전…국제장애인기능대회서 금메달
거제 조선소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생긴 장애를 이겨내고 지난달 22일 국제장애인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류현곤(44·거제) 씨와 이규련(37·거제) 씨가 그 주인공이다.
류현곤 씨는 조선소에서 22년 넘게 일했다. 2001년 봄, 22살이던 류 씨는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거제로 향했다. 2000년대 초반 호황기를 누리던 조선업이 특히 대우가 좋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다.
선박 건조를 위한 주춧돌을 쌓는 일을 했던 류 씨는 업무 특성상 무거운 목재를 수시로 옮겨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선박 하부 공간이 좁아 작업도중 목재구조물에 머리를 부딪치기 일쑤였다.
한창 의욕이 넘치던 입사 6년차, 결국 사고가 났다. 작업 중 목재 구조물에 머리를 정통으로 부딪친 것이다. 목이 뒤로 젖히면서 목디스크가 터졌다. 손가락이 마비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결국 류 씨는 목뼈와 뼈 사이에 인공 보형물을 넣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류현곤(오른쪽) 선수와 이규련 선수가 지난 22일 프랑스 메스에서 열린 제10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류현곤
류 씨는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다 보니 목에 누적된 피로가 있었던 것 같다”며 “딱 부딪히는 순간 그대로 드러누워 움직일 수 없었는데, 이거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 씨는 2년 3개월 만에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다시 10여 년을 험난한 조선소에서 버텼다.
류 씨가 장애인기능대회에 도전한 것은 최근 일이다. 주변 권유로 대회를 알게 됐고, 무작정 도전해보기로 했다. 목 디스크로 수년간 고생했지만, 건강하게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경험이 있던 그였기에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류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대회가 열리던 지난 22일까지 3개월 동안 밤낮없이 연습했다.
류 씨는 “대회 시작 전까지 평일·주말 없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만 했다”며 “목이 불편하다 보니 걱정도 됐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류 씨는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당당히 정상에 올랐다. 현업과 전혀 관련 없는 전기 분야였지만 10여 년 전 병상에서 일어나 조선소로 돌아오던 그날처럼 이겨냈다.
류 씨와 함께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규련 씨도 산업재해로 생긴 장애가 있다.
평택 출신인 이 씨는 21살 때 처음 거제 조선소에 발을 들였다. 이 씨는 제대 후 대기업 현장직 입사를 목표로 기업체 몇 곳에 서류를 넣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그러다 거제 한 조선소에서 현장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고향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지만 2008년 당시 조선업 경기가 좋다는 이야기에 큰 고민 없이 서류를 넣었다. 운 좋게도 한 번에 입사한 이 씨는 배관을 연결·고정하는 일을 맡아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 씨는 일이 손에 꽤 익숙해졌을 무렵 사고를 당했다. 2019년 늦여름 이 씨 왼손 엄지가 절단 기계에 끼였다. 손가락이 절단되지는 않았지만 관절이 분쇄 골절되며 장애를 얻었다. 산재 요양 기간만 1년 6개월, 재활을 마치고 현장 복귀까지는 2년이 걸렸다.
이 씨 역시 장애인기능대회에 도전한 것은 주변 권유였다. 하지만 그는 애초 출전할 마음이 없었다. 권유받은 분야가 용접이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용접 관련 자격증만 있을 뿐, 용접기를 내려놓은 지 10년도 더 됐다.
한참 고민하던 이 씨는 평소 약점이었던 용접을 이번 기회에 강점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참가를 결심했다. 그도 3개월 남짓 용접에만 매달렸다. 불가능할 것 같던 미세 용접도 하나 둘 해내며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대회에 출전해서 경기를 끝냈을 때는 우승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내 전문 분야가 아니었는데도 노력으로 결과를 얻어낸 것 같아 기분이 배로 좋았다”고 대회 소감을 전했다.
비장애인으로 생활하다 사고로 중도장애인이 된 이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등이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며 입 모아 말했다.
이 씨는 “장애인이 되고 보니 나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더라”며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숨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고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는 존재”라며 “장애인들이 노동 현장에 더 많이 진출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것을 비장애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경남도민일보 4월 4일 기사 인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