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국학원 장영주 원장

▲사)국학원 장영주원장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세계 5대 해전’을 꼽으라면 대개 B.C 480년의 그리스 데미스토클레스 제독의 살라미스 해전, 1588년의 영국 하 워드 제독의 칼레 해전, 1592년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한산대첩, 1805년의 영국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 1905년 5월 27일의 일본 의 도고헤이아치로의 쓰시마 해전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제일 먼저 대중들에게 알린 분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시다. 신채호 선생은 1908년 6월, 11일~10월 24일 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소설에서 이순신 장군을 처음으로 ‘성웅(聖雄)’으로 정의 하였다.

성인과 영웅의 품격을 아울러 갖춘 분이라는 뜻이다. 신채호 선생의 글은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었지만 4개 월 만에 당연히 일제에 의해 판금조처가 내려 졌다. 1931년 6월 26일부터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장편의 '이순신'을 연재하였다. 같은 일제치하에서, 같은 주인공을 두고 쓴 소설임에도 신채호의 연재소설은 중단되고, 이광수의 이순신 연재소설은 끝까지 안료 되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 이었을까?

신채호가 쓴 소설은 이순신의 인품과 지혜를 밝히되 힘을 합해 싸운 장졸과 백성을 모두 소중하게 서술했다. 허지만 이광수는 이순신만 미화하면서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관료들을 형편없이 비방하여 은연중에 친일정책에 동조하도록 몰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분의 한국인이 저술한 이순신장군에 대한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 무려 16년 전인 1892년(명치25년)1월 文祿征韓水師始末 朝鮮 李舜臣傳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전기가 태어난다. 묘하게도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로부터 정확하게 4백년 전의 일이다.

저자는 당시 조선의 항, 포구를 샅샅이 실측하던 일본인 ‘惜香生’이었다. 원고는 육군 보병 대위 ‘시비야마 나오노리’에게 전달되어 출간되면서 일본이 지금도 세계에 자랑하는 ‘명치 해군’의 건설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지금으로 부터 210여 년 전, 일본의 군인도 아닌 일반 국민, 그것도 일개 측량사에 불과한 ‘惜香生’은 조선 침략을 위하여 조선의 항, 포구와 조류, 물살, 바람 등을 샅샅이 조사하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본인 ‘惜香生’은 그 어떤 물리적 상황보다도 전쟁을 수행하는 장수된 자의 됨됨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또 다시 임진왜란의 ‘못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잘못을 본받지 말자는 사명감에 의하여 ‘조선 이순신’의 전기를 쓰고 일본 육군의 고위 장교에게 보내어 출판 하도록 염원한다.

“…소생은 우리해군의 장래가 대단히 염려되며 그래서 임진년 해군의 실패를 절실히 개탄하고 이를 두고 우리 해군을 더욱 원망하고 있습니다. ‘전복을 보고 후차가 조심하게 된다.는 경경한 미충을 귀하께서 잘 통찰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조선 한성에서 11월1일 ‘惜香生’

200여 년 전, 고향 일본을 떠나와 조선의 바닷가를 떠돌던 일본측량기사 ‘惜香生’은 일본으로 보면 얼마나 지극한 애국자인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를 지경으로 그의 자기나라에 대한 충성에 진심으로 머리가 숙여진다.

한편, 그의 뜻이 명치유신의 막강 일본 해군으로 이어져 걸출한 해군의 지도자를 탄생시키니 바로 ‘도고 헤이하치로 (東鄕平八郞 1848.1.27~1934.5.30) 제독’이다. 천하가 인정하는 명장인 그가 이순신 장군을 스승처럼 존경하고 높게 평가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러일 전쟁 승전 후 도고 제독이 세계적인 영웅이 되어 있을 즈음, 미국 해군사관학교 4학년 임관 후보생들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 때, 도고 제독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조선의 수군을 지휘한 이순신 제독입니다."라고 대답 하였다. 학생들이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해 묻자, "이순신은 해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이며 이순신과 비교하면 자신은 하사관도 못 된다." 라고 겸허하게 대답했다. 피아간에 생사와 국가의 존폐를 걸고 벌리는 전쟁에서 용맹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상대와 자신을 바로 알고 적합하게 반응하는 비움이 장수에게는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적의 장수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 절대적인 약세에서 최대의 승리로 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은 ‘도고’는 이순신의 가장 충실한 제자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우리는 어떠한가?

경상남도는 임진왜란 시에 쓰던 군수품을 다시 제작하여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임진왜란 관람시설이 있는 남해군과 통영시에 무상으로 양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시용 복식 23습은 남해군 소재 이순신 영상관에 전시해 관광객이 관람토록하고 문화강좌나 사극 및 영화의상·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자료 등으로 활용 할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최근 1여 년 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이 먹었던 '이순신 밥상'과 ‘술’을 이어서 개발하였다. 관계자는 “이번 임진왜란 조선수군 군수품 복원은 그 역사적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이미 개발된 이순신밥상과 지난 6월 3일 진수식을 마친 거북선과 판옥선과 연계해 체험하며 머무를 수 있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경남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 한다.”고 했다. 왠지 서럽지 않은가? 무엇인가 부족하지 않은가? 정작 그분들의 정신과 신념과 철학을 가르칠 생각은 없는가?

지금 우리는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자 앞에 ‘충무공’,‘성웅’, ‘불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막상 우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 진심으로 알려 하고, 일심으로 존경하고, 최선을 다하여 닮으려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적에게조차 스승인 된 이순신 장군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머지않아 거제와 통영사이의 견내량 에서는 50번째의 한산대첩이 재연 될 것이다. 밥상과 군수품도 중요하고, 관광객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변하지 않는, 빛나는 그 정신 효충도(孝忠道)의 국민적인 실천이며 그것을 거제가 앞장서서 힘써 배우고 교육하는 것이다.(글:사)국학원 원장(대), 한민족 역사문화 공원 원장 원암 장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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