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원 거제박물관 관장

▲황수원 거제박물관 관장
며칠 전 연초면 천곡리의 천곡사에서 거행된 ‘한국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석했다. 한국 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으니 올해로 61년이 되는 셈이다.

이번이 2회째의 합동 위령제이니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던, 아니면 무심한 세월속에 무관심으로 지냈던 수많은 시간들은 결코 희생자들의 영혼과 그 유족들의 아픔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거제유족회를 결성하기까지 ‘거제박물관’에서는 여러 차례 회의를 했고, 민간인 피학살자의 조사를 위한 신고를 받기도 하고, 영령들의 넋이라도 달래기 위한 합동 위령제를 기획하기도 하였으나 분분한 의견 때문에 언론에 발표까지 해놓고 추진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 사건은 해방 후 이승만 정권하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첨예했던 시절로 되돌아 간다. 해방은 좌우를 불문하고 공동으로 염원했던 민족적 과제였기에(중국의 국공합작을 참고)표면상으로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기우한 해방전쟁에서의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막상 1945년 해방이 된 이후부터는 권력을 위한 투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결국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좌익활동가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강화된다. 그 중 보도연맹은 좌익활동의 혐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승만 정권이라는 새로운 공화국에서 과거의 전력에 상관없이 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살길을 찾도록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만든 조직이었다.

그러나 거제도의 자료만을 놓고 볼 때 실제로 보도연맹원이 된 사람들은 좌익 활동가라기보다는 좌익과 우익의 개념도 몰랐던 평범한 민간인과 좌익전력자에게 물 한 잔, 담배 한 개비, 밥 한 그릇을 준 경우와 가족들도 그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1947년부터 1950년 9월까지 국군 16연대, 호림부대, 대한 청년단, 거제경찰서, 헌병대, 해군 G-2, HID등에 의해 최소 475명에서 최대 8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위의 혐의자로서 정국의 안정과 6.25전쟁에서의 후방교란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어떤 법적인 절차나 사실규명의 기회도 없이 처단된 것이다.

조사된 건에 의하면 거제지역은 159명으로 되어있으나, 추정치는 1,000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불법적이고, 반 인륜적인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다에 수장되거나 몰래 파묻은 시신들의 수습도 허락되지 않았고, 언제 무슨 이유로 죽였는지도 알 수도 없었다. 게다가 유족들은 이 후 연좌제에 묶이게 된다.

지금은 연좌제가 폐지되었지만 연좌제는 공직에의 취임은 물론이고 취직과 승진등에서 조차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악법중의 악법이었다.

유족들과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2005년 5월 초에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제정되고 그 해 12월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또한 이 위원회에서‘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하여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조사결과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최소 475명에서 최대 800명이다.
2)희생자의 상당수는 좌익활동 경력이 전무하고, 좌익사상과는 무관한 20 ~ 40대의 농민, 어민이 대부분이다.
3)전시의 혼란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군경이 적법한 절차없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동 위원회에서는,
1)국가는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2)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조치가 필요하다.
3)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유족들이 희생자의 위령제 봉행, 위령비 건립등의 위령사업지원방안을 마련하고, 희생현장 안내판 설치, 유해발굴, 유해안치장소 건설등의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4)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 군지,시지등 공공기록물에 보완 추가하여 진실규명내용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5) 끝으로, 군,경,공무원에게 전쟁 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법률과 국제 인도법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전시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미래세대인 초,중,고등학생들에게 평화 인권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정부에 ‘결론과 권고사항’을 전달하였다.

이 권고안대로 경기도에서는 강화도에서 있은 위령제에 도지사가 직접 참석하고 대부분의 권고사항을 이행중이라고 들었다.

거제도와 한국전쟁(6.25)은 결국 동일 공간안의 사건이다. 지금 우리는 포로수용소를 반공교육과 관광의 장소로서만 기억하고 그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해 들추어 낼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닌지, 혹은 우리의 무지로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자.

전쟁의 교훈은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는데 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모든 가슴 아픈 기록들을 우리가 잊지 않는 한에서만 지켜진다.

60여 년 동안 그늘속에서 숨기고 살았던 외롭던 진실과 결코 안녕할 수 없었던 세월을 살아오신 유족들에게 사죄와 위로를 드리면서 하루바삐 이분들이 원하는 사업들이 원만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거제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