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테마박물관 유은지 학예실장, '라흐멧, 카자흐스탄' 발간

▲ 유은지 학예실장
중앙아시아의 낯선 나라 카자흐스탄에서의 봉사활동과 2년 간의 경험을 엮은 책이 나왔다. 해금강테마박물관 유은지 학예실장이 지난 해 12월 '라흐멧, 카자흐스탄'을 발간했다.

'라흐멧, 카자흐스탄'은 2년 간 카자흐스탄에서 해외봉사활동을 했던 저자의 수기이다. 봉사활동의 경험들과 문화적 차이들, 그리고 여행기를 시간 순서대로 담은 이 책에는 낯선 문화 속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배어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카자흐스탄의 낯선 문화에 당혹스러워하기도 하고, 봉사활동으로 하며 외로움과 고립감도 느낀다. 택시기사에게 느닷없이 청혼을 받기도 하고, 새벽에 팬티만 입은 옆집 아저씨가 찾아오거나 일하던 대학교의 개교기념일에 혼자 출근해서 황당해하는 일도 벌어진다.

현지사정을 잘 몰라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슬람 사원에 구경을 갔다가 남자들만 들어가는 곳에 멋모르고 들어가서 쫓겨나기도 하고, 우체국에서 국제우편을 보내는데 6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화적 충격과 자잘한 차이를 겪으면서, 저자는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를 알아가고 봉사활동의 의미를 찾아간다.

또한, 책의 부록에는 민속학을 전공한 저자가 카자흐스탄에서 직접 관찰한 1년 간의 세시풍속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카자흐스탄이라는 낯선 나라의 문화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또한 소련 시대 강제이주를 당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독자에게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한편, 저자인 유은지는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2년 동안 KOICA(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카자흐스탄의 카자흐국립대학교에서 활동했다. 현재 해금강테마박물관 학예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부경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민속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009년 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또한 저자는 신문기자, 석면피해조사원,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등으로 재직했으며 3권의 소설을 출간하는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해외봉사자들의 삶과 봉사활동, 현지에서 겪는 어려움을 꾸미지 않은 날 것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며, 그녀에게 봉사활동이 “삶의 방향을 바꿀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저자는 “봉사활동의 경험을 살려서 해금강테마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소외계층에 대한 문화복지 ‘나눔’사업을 추진하고 싶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라흐멧”은 고맙습니다라는 의미의 카자흐어이다.)

책 발췌분

나는 외국인으로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과 수원국에서 봉사자로 일하는 것이 어떤가를 모두 글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이국적인 경험담을 늘어놓고 싶은 것이 아니라, 봉사자였던 나의 2년간을 통해서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보여주고 해외봉사활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봉사단원의 일상에 대한 에쓰노그래피(ethnography)다. (머릿말)

봉사활동이란, 버거울 정도로 많은 수업을 맡아서 끙끙대면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한국어로 3·6·9게임을 하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너무나 빙 돌아왔다.(pp.228-229)

외국인으로서 불편한 것은 단순히 말이 통하지 않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이방인으로서 고립된다는 것이다. 그가 아는 상식과 분류는 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고, 아무도 그에게 선뜻 말을 건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어의 장벽으로 그가 가질 수 있는 관계는 자기소개를 하는 정도의 피상적인 관계에 국한되고, 그가 어떤 인간인지 진정으로 보여줄 기회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 언어가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진다는 것은 한 세계를 살아가는 한 인간이 다른 세계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다. 나는 외국인으로서 카자흐스탄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이곳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에게 이들의 일상은 확연히 다른 외계의 세계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것이 나에게는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p.114)

여전히 나는 새벽 3시에 놀랐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고, 자그마한 몸집에 어두운 복도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검은 털을 가진 옆집 개가 나에게 좋아라 달려들면 깜짝깜짝 놀랐다. 이따금씩 복도 출입구에 숨어 있다가 놀래키는 식의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 옆집 아이들 때문에 복도를 나갈 때는 늘 좌우를 살피는 습관도 생겼다. 그러나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좋은 사람들도 존재하며, 이따금씩은 오해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나쁘게 판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pp.172-173)

우슈토베는 알마티 주의 작은 소읍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조금 특별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곳은 바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이 처음 정착했던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37년, 소련 정부는 극동지역 달니보스톡의 고려인들에 대한 강제이주를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 그들은 동쪽에서 열흘이 넘게 기차를 타고 이곳 낯선 카자흐스탄의 스텝 지대 한가운데 버려졌다. 그들은 기차의 경로에 따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끄즐오르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등에 대부분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카자흐스탄 땅에서 고려인이 가장 먼저 정착한 지역이라고 한다.

그들은 소위 ‘요주의 민족’이었기 때문에 따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야만 했다. 때문에 늦가을 얼어붙기 시작하는 땅을 파고 토굴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생활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보내는 첫 밤은 아마도 춥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 이방인들을 가엾게 여긴 마을의 카작인들이 한겨울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짓는 것을 도와주어서 고려인들은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pp.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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