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니 오늘의 장가계를 얻었다"
"마음을 비우니 오늘의 장가계를 얻었다"
  • 김철문 기자
  • 승인 2008.07.18 09:2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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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곡 이성보 10년 역작 '미니 장가계' 거제서 최초·마지막 공개
  • ▲ '미니 장가계' 1,000여 작품과 거제자연예술랜드 모든 작품 '곧 거제 떠난다'
  • ▲ 능곡 이성보,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곳으로 미련없이 떠납니다."

지난해 11월 8일 에스비에스(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468회에서는 경남의 한 곳이라고만 밝히고, 미니 장가계를 방송했다.

에스비에스(sbs) 방송은 '미니 장가계'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중국의 살아있는 산수화 장가계! 수직으로 솟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그 모습이 무릉도원이라 할 만큼 천하비경인데. 이런 장가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괴한 모양의 돌기둥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돌기둥을 혼자 힘으로 만들었다는데, 그 개수만도 무려 1000개!

▲ 지난 14일 방문했을 때 '미니 장가계'의 모습

▲ 올해 3월 2일 방문했을 때 '미니 장가계' 모습

게다가 돌 사이사이에 구멍을 뚫어 전국 팔도에서 모은 식물을 키우고 있었는데. 죽은 돌에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돌로 만든 정성은 신선도 감동할 경지!'

기자는 지난 3월 2일 장가계가 있는 곳을 수소문한 후 한번 찾은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한 '세상에 이런 일이'의 그곳은 동부면 조그만 마을의 양지바른 곳에 '꼭꼭' 숨어있었다.

지난 14일 거제시의회 의원들의 현안사업 현지 확인 방문에 다시 방문했다.

올해 3월 2일 장가계를 방문했을 때,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3m 크기 1000여개의 석부작은 겨울을 이기고 봄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돌기둥에 붙여놓은 각종 진기한 식물들이 새순을 틔우며, 따스한 햇살과 봄바람을 들여마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 높이 3~4m의 석부작 작품 1,000개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비닐하우스가 곳곳에 찢겨져 나가, 겨울을 용케도 잘 이겨냈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지난 14일의 장가계 방문은 언제 겨울이 있었느냐 듯, 돌기둥 곳곳에 온갖 식물들이 튼튼히 자리를 잡아, 힘찬 성장의 '몸짓'이었다. 한 예술가의 혼신(魂神)의 노력 덕에 '돌과 식물'의 절묘한 조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 '미니 장가계' 작품을 만든 이는 '능곡 이성보' 

'미니 장가계'를 만든 장본인은 동부면 동부저수지 앞에서 '거제자연예술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능곡 이성보 선생이었다.

▲ 지난 14일 거제자연예술랜드를 방문했을 때, 능곡 이성보 선생(가운데) 모습
능곡 이성보 선생은 "자연이 만든 무릉도원을 나의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석부작으로 장가계 만들기에 전념했다"며, "돌을 가꾸고, 돌·자연과 대화하면서 IMF 당시에 받았던 상처도 달랠 수 있었다"고 했다.

능곡 이성보 선생은 지난 1994년 5톤 트럭 200대분의 수석, 난, 석부작, 목부작 등 작품을 싣고 고향으로 달려왔다. IMF를 생각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현금을 차입해 거제자연예술랜드를 시작한 것이 화근이돼 현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94년에 거제에 내려왔다. 95년 7월 거제자연예술랜드를 개장했다. 현금 5억 차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IMF로 금융비용 이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5,000평 부지가 경매에 넘어갔다. 그 후 소송이 진행됐고, 지금현재 화의신청이 받아들여져 조정이 진행중이다. 거제자연예술랜드의 작품에 대한 소유권과 지상권은 가지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부담. 결국 빚더미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고통의 긴터널. 인내와 삭임으로 세월에 맞설 수 밖에 없었다. 세간의 시선은 "능곡은 이제 끝이다."

자연의 섭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능곡은 허허 웃었다. "그래 세상에 보이는 모습은 끝일 지 모르지만, 능곡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때부터 '미니 장가계'를 머릿속에 그리며, 돌을 다듬고, 기둥으로 연결하고, 돌에 식물을 붙이기를 10년 동안 숱한 한과 고뇌를 석부작에 담기 시작했다.

능곡 선생은 "미니 장가계를 필생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바둑으로 치면 기사회생의 묘수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버리다보니까 오늘의 장가계를 얻었다."

▲ '미니 장가계와 거제자연예술랜드 곧 거제를 떠난다'

하지만 '미니 장가계'는 사진으로만 감상할 수 밖에 없고, 거제자연예술랜드도 이제 거제를 벗어날 날도 머지 않았음을 지난 14일의 취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능곡 선생이 모든 인생을 바쳐 만든 작품들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거제자연예술랜드 전시작품도 300여평의 전시공간에 비해 작품이 너무 많으며, 작품마다 창의성과 독창성을 살릴 수 없는 상태이다.

더구나 '미니 장가계' 1000여개의 작품은 아직 관람객에 선을 보이지 못하고, 비닐하우스 안에 그대로 있다.

지난해 거제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이행규 의원은 "이성보 선생의 모든 작품을 거제시에 넘길 의향이 있는 것 같은데, 거제의 멋진 관광 상품으로 만들 용의가 없느냐"고 거제시장에게 물었다.

김한겸 시장은 "검토는 해보겠다"고 답했지만, 그 검토가 '하세월이다.'

이성보 선생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과 접촉을 벌여 조만간 이사를 할 계획임을 귀뜸했다. 그리고 기자에게 사진을 많이 찍어놓으라고 했다. 다시는 거제에서 볼 수 없으니.....

"최소 50억원에서 300억원의 가치를 인정해준다. 모든 작품을 가지고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머뭇거림도 망설임도 없이. 음식을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음식을 권하겠나. 귀한 줄을 모르고, 작품의 가치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얘기해서 무얼하겠나."

능곡 선생은 사마천 사기열전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읊조렸다.
"士爲知己者用(사위지기자용)이고 女爲說己者容(여위열기자용)이라."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

"나도 거제사람이다. 지난 94년 서울에서 싸가지고 왔다. 내 임의로 내려왔다. 거제자연예술랜드를 운영하다 IMF를 맞아 경영 악화를 맞았다. 가능하면 장가계와 거제자연예술랜드의 거제 존치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진지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IMF 직후에 거제시에 매입 의사를 타진했다. 결국 인간적인 수모만 당했다. 거제시가 당신 빚 갚아주는 곳이냐? 정치와 무관한 사람을 정치적으로 엮어, 매도를 하고, 경원시 했을 때 모욕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돌 하나 하나를 연결해 세운 돌 기둥에 이끼를 붙이고, 각종 식물을 붙여, 생명체를 만드는 10년 동안의 지난한 과정.

▲ 올해 3월 2일 방문했을 때,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인 모습
올해 3월 2일 방문 때 이성보 선생의 무릅튼 손, 손마디가 갈라져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손이 가슴 저미게 했다.

옛 성현인 묵자는 자신의 모습을 알려면 물에다 자신을 비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했다. 물에다 비추면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견주어 보면 세상사의 길흉사를 알 수 있다고 했다.(君子不鏡於水(군자불경어수)하고 而鏡於人(이경어인)하라. 鏡於水(경어수)이면 見面之容(견면지용)하나 鏡於人(경어인)하면 則知吉與兇(즉지길여흉)이라)

능곡 선생에게 다시 물어봤다. 능곡 선생은 "감어석(鑑於石)이지. 말없는 자연에, 그리고 돌(石)에다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그러면 자기를 볼 수 있을 것이네."
▲ 거제자연예술랜드 안 만인상 중 한 작품
지난 3월 2일 방문 때 취재를 끝내고 돌아설려고 하자, 능곡 선생이 작업실로 들어가 한참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능곡 선생은 주먹만한 몽돌에 심어진 식물 세 그루를 가지고 나왔다.

동행한 취재진의 자식 세 명을 불러모았다. 세 명의 어린이에게 조그만 몽돌화분을 하나씩 건네주면서 이렇게 다짐을 받았다.

"사람은 밥을 먹고 자라듯, 식물은 물을 먹고 자라니 이틀에 한번씩 물을 줄 수 있지" 하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다짐을 받듯 화분을 건네주었다.

다음 세대에...
 


▲ 능곡 이성보 선생 약력
○ 1947년 경남 거제시 능포 출생
○ 장승포초등학교, 거제중고등학교졸업
○ 동아대학교 법경대학 정외과 졸업
○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중소기업정책학과 졸(행정학석사)
○ 정보통신부 근무(13년)
○ (주)한아통신 전무이사 역임
○ 88~00년 개인전시회 7회 개최(세종문화회관 전시실 외)
○ 제5회 신인문학상 당선(현대시조)
○ 국제펜클럽 회원

○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한국문인협회 거제지부장 한국예총거제지부 이사
○ 현대시조문학상운영위원 현대시조 동인문학회 회장
○ (사)한국자생란보존회 전무이사 역임
○ (사)한국난문화협회 감사
○ (사)한국난등록협회 심사위원
○ 한국춘란회 학술위원
○ 거제도 수석연합회 고문 역임
○ 거제도난연합회 고문
○ 향파 김기용 선생 애란비 건립추진위원(역임)
○ 무원 김기호 선생 시조비 건립위원회 회장
○ 동랑 청마 기념사업회 회장
○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 수상경력

○ 1991년: 한국 란 명품 전국대회 대상
○ 1994년: 대한민국 난문화 대상
○ 1996년: 효당문학상
○ 1996년: 자랑스런 경남도민상
○ 1997년: 신한국인상(대통령상)
○ 2000년: 제10회 우리꽃박람회 분경분화부문 농림부 장관상.
○ 2003년: 거제예술상


▲ 저서

○ 수필집 / 난을 캐며 삶을 뒤척이며
○ 수필집 / 난과 돌, 그 열정의 세월
○ 수필집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
○ 수필집 / 난, 그 기다림의 미학
○ 시조집 / 바람 한자락 꺾어들고
○ 재배이론 / 동양란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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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테라스 2009-02-19 14:39:53
지난해 방송을 일로 바쁘다는 현실로 우연히 오늘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뒤지면서 어디에 있는지 보고싶어 뒤지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도 장가계를 만들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선생님처럼 용기가 없는 조경업을 하고 있는 현실주의자 입니다.
세월을 묻은 선생님의 소박한 꿈을 꼭 이루셔서 미니 장가계가 세상으로 나올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보고 싶은데 지금아니면 거재를 떠날지도 모른다니 못볼수도 있겠군

왕짜증 2008-07-19 13:42:33
거제시 발전과 자연을 후손들에게 고귀한자산으로 남겨주기위해 노력하시는분이 있는가하면 같은화면속에있는 자칭의원이란 작자들은 개인사리사욕을위해 불철주야노력하다 뜻대로 안대니 의회를 식물의회로 만드는데 선두주자를 자칭하는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이상문.. 너는 제발 화면에 나오지마라 너 보고나면 짜증난다는 사람들이너무나많다.

합장 2008-07-19 09:32:43
절망 좋은 기사감인 것 같네그려...
들를때마다 혼자 구석진 비닐하우스에서 오직 난과 자연속에 파묻혀 묵묵히 일하시는 이성보선배님! 절말 존경합니다. 거제시의 소중한 자산을 거제시에서 잘 보호하고 간수를 잘해야지 밖으로 나가게 된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거제시장과 거제시 공무원님!
이제라도 거제시에서 매입해서 세계적인 생태학습장으로 만들어 보세요.
정말 귀중하고 아깝습니다.

합장 2008-07-19 09:24:47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난과함께 하는 이성보선배님의 열정과 혼에 머리를 숙입니다.
거제시의 소중한 자산인데 밖으로 나간다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거제시에서 매입해서 세계적인 생태학습장으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들를대마다 혼자 묵묵히 일하시는 이성보선생님의 수고에 깊은 머리숙이며.......
김철문기자에게 좋은 것을 취재해서 박수와 감사를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