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5월 6일 거제경찰서에서 촬영한 사진…7월 27일 수장(水葬) 당해

1950년 7월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지심도 앞바다에서 수장(水葬) 당하기 전 생존자 사진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끈다.

한 장의 사진은 그 당시 장승포에 있었던 거제경찰서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45명의 얼굴이 담겨있다.

사진 좌측 상단에는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우’라는 글귀가 있다. 그리고 사진 아래측에는 ‘옛날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사찰유격대와 옥녀봉부대 ○동 단기 4283. 5. 6’이 적혀있다.

▲ 1950년 장승포에 있었던 거제경찰서에서 촬영한 사진
단기를 서기로 바꾸면 1950년 5월 6일에 촬영한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넥타이를 맨 사람과 일반 서민 복장을 한 두 부류로 크게 나뉜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은 사찰(査察)유격대 소속으로 추정되며, 일반 서민 복장은 옥녀봉부대원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전후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자 조사에 참여한 조사관은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자 조사를 할 때 야산대인 옥녀봉 부대가 자주 거론됐다”며 “야산대에 참여했다가 자수를 했지만 보도연맹원에 포함시켜 계속 주의 깊게 관리를 했다”고 했다.

이 사진에 아버지가 포함돼 있는 아들 곽 모(64ㆍ연초면)씨는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해 거제경찰서에 자수를 해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7월 달에 잡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했다. 곽 씨는 “아버지는 그 당시 32세였다”고 했다.

▲ 곽 모 씨의 아버지 곽종윤. 검은 테두리 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기록 등에 1949년과 1950년에 일어난 ‘거제국민보도연맹사건’이 조사돼 있다.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9년 6월에 좌익계 인물들을 전향시켜 별도로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조직되었던 단체로, 흔히 보도연맹이라고 부른다.

1949년 10월에 국민보도연맹 거제도특별지구 결성식을 갖고, 1950년 1월까지 면․리 단위의 조직을 결성했다. 창립 당시 보도 연맹원은 약 26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1950년 7월 14일 강경일 CIC통영파견 대장은 “거제경찰서와 CIC문관에게 갑종 보도연맹원 43명을 즉시 구속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1950년 7월 19일 강화봉 거제경찰서 사찰계 주임은 을종 보도연맹원 29명의 명단을 강경일에게 보고한다. 강경일은 21일 을종 보도연맹원 29명도 구속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7월 25일 오후 9시경 강경일은 거제경찰서에 ‘갑종, 을종 보도연맹원 72명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7월 26일 오후 7시 강화봉 거제경찰서 사찰계 주임은 사찰계 형사, 거제CIC 분견대 대장 유기봉, 해군정보대(G-2) 부대장 박진홍, 해군정보대 대장 천재홍, 거제도 HID 윤상오 등이 참석한 자리서 “보도연맹원을 즉결 처단할 것이니 각자 특히 기밀을 유지하라. 만일 기밀을 누설하는 자는 처단한다”, “해군정보처 부대장 박진홍 지휘를 받아 출동하라”고 명령했다.

1950년 7월 27일 새벽 1시경 도망 간 1명을 제외한 보도연맹원 71명을 일운면 지심도 앞바다 구조라끝 해상에서 쇠사슬에 묶어 수장시켰다.

같은 날 새벽 2시경 사등면 성포지서에 갇혀 있던 주민 50명도 가조도 앞바다에서 수장을 당했다. 이밖에도 조사에 따르면 8월 말까지 거제도 곳곳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 수장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곽 모씨는 “그 당시 할머니가 외포 해안가에 밀려온 시체를 하나하나 뒤졌으나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곽 씨는 “아버지를 시체를 찾지 못해 그 당시 돌아가신 날로 추측되는 음력 6월 11일을 제삿날을 정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9월 15일 한국전쟁 전후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해 발표했다. “서철암 외 172명 이상의 통영․거제지역 주민들이 1947년 8월부터 1950년 9월까지 빨치산 협력자, 국민보도연맹원, 부역혐의자(좌익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국군 16연대, 거제경찰서, 헌병대, CIC, 해군G-2, HID 등에 의해 거제 가조도 앞바다, 거제 지심도 앞바다 등에서 집단 희생된 사실을 진실 규명한다.”

곽 씨는 “2009년 진실화해위 조사 때 조사한다는 사실을 몰라 아버지는 희생자로 신고하지 못했다”며 “연좌제 등으로 평생 당한 고초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우영(72) 거제민간인희생자 유족회 회장은 “희생을 당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절대 다수다”며 “과거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1세대들이 사라지기 전에 국회에서 하루 빨리 특별법을 만들어 재조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거제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는 지난해 10월 16일 60년 만에 ‘거제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거제실내체육관에서 가졌다. 올해도 10월 16일 제2회 위령제를 갖는다. 유족회 연락처 635-57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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